남보다 못한 모자지간.
'옥동'(김혜자)은 '동석'(이병헌)의 어머니다. 푸릉마을 사람들은 '춘희'(고두심)와 옥동을 어머니나 할머니 대하듯 한다. 말수 없고 순해 보이는 이 할머니도 많은 아픔을 겪은 사람이다. 목포에서 태어난 옥동은 어린 시절에 뱃일하던 부모님이 돌아가시고, 어린 동생과 어렵게 살았단다. 제주 사람인 동석의 아버지를 만나 결혼했지만 태풍으로 남편을 잃고, 생계를 위해 딸과 함께 해녀를 하기도 했는데, 그때 꽃다운 나이의 딸마저 바다가 앗아간다.
도대체 소중한 사람 몇을 바다에서 잃었는지... 지지리 복도 없다. 그렇게 어린 아들 동석만 남았고, 옥동은 남편 친구의 첩으로 들어가 원래 아내의 병시중을 들며 살게 된다. 어린 동석을 키우기 위해 몸을 의탁할 곳이 필요했을 옥동이었고, 절박한 처지에 남의 입방아에 오르는 것 따위 신경 쓰지 않았다.
하지만 어린 동석에게는 이런 모든 상황들이 마음에 상처로 남았고, 다 큰 어른이 되어서도 동석에게 어머니는 원망의 대상이다. 엄마는 동석을 향해 한번을 웃어주지 않았다. 양아버지의 집으로 들어가던 날도, 울며 불며 가지 말자고 말하지만... 차가운 표정으로 동석의 뺨을 때리며 이제 '작은 어머니'라고 부르란다... 동석이 의붓 형제들에게 개 맞듯이 맞는 걸 보고도 멀뚱멀뚱... 동석의 원망이 마냥 이유 없어 보이진 않는다.
"밥은?..."
"밥?... 갑자기 무사 그게 궁금해?
평생 내가 밥을 먹든 안 먹든,
아는 척도 안 한 사람이?..."
이렇게 남남처럼 지내는, 아니 어쩌면 남보다도 못하게 지내는 모자지간인데... 갑자기 불쑥 전화가 와서는 '밥'이라니... 동석은 울화가 치민다. 하지만 아들과의 대화에 서툰 옥동이 고민하고 고민해서 했을 말이 '밥은?'이라는 것도 참 짠한 부분이다...
사실 옥동은 이 즈음에 말기 암 환자다... 죽음을 앞두고 있는 어머니 옥동은 아들인 동석에게 목포에 데려다 달란 말을 한다. 이 말에 동석은 또 한 번 울화가 치미는데, 양아버지 제사 때문에 목포에 있는 의붓 형제들의 집에 가자는 소리니까 화가 날 수밖에...
"오빠는 그러지 마.
엄마한테 물을 수 있을 때 물어."
'선아'(신민아)와 통화하던 동석은, 어릴 적 어머니와의 일과 그에 대한 원망의 감정을 쏟아낸다. 그러다가 선아가 조언의 말을 건네는데, 아버지가 돌아가신 선아는 이제는 묻고 싶어도 못 묻는단다... 어머니와 상종도 하지 않을 것 같던 동석은, 선아의 이 말에 뭔가 심경에 변화가 생긴 듯하다.
옥동과 동석의 목포 여행.
"어멍 하고 싶으신 거 다 한 다음에...
그다음에 기대해요.
그때 내가 무슨 말을 하는지..."
이렇게 불편한 사이인 모자는 목포까지 함께 가게 된다. 시작부터 이것저것 시키는 일도 많고... 동석은 한껏 짜증이 나 있는 눈치인데... 무슨 이유에서인지 동석은 옥동이 하고 싶어 하는 것들을 다 들어준다. 무슨 말을 할지 기대하라는 말을 보면, 따질 말이 참 많은 것 같다.
옥동이 목포에 온 이유는, 신변 정리를 하는 듯한 느낌이다... 삶이 얼마 남지 않았다고 느꼈는지, 의붓아들들을 보러 가고, 목포에 있는 옛 고향을 보고 싶었던 것 같다. 그 여정에 아들인 동석과 함께하고 싶었던 거고...
"너네들 형제한티 뻑하믄 죄 없이 줘 맞고
지 어멍은 첩살이에 종살이하는데
그만썩 참았으면 많이 참았지게!"
제사 때문에 의붓 형제인 '종우'의 집으로 찾아갔는데, 앞 아파트로 이사 간 지가 1년이 넘었단다... 동석은 이런 옥동을 답답해한다. 분명히 옥동에게 오란 소리도 안 했을 텐데... 오랜만에 봤지만 '종우'는 여전히 몰상식하고 경우가 없다. 묵은 감정이 많은 동석과 종우는 기어이 싸움이 나고, 어처구니없이 동석을 탓하는 종우의 말에, 옥동은 오랜 세월 참아왔던 울분을 터뜨린다... 이 집에서 언제나 눈치 보고 '을'의 입장이었을 옥동은 여기서 진짜 아들인 '동석'의 편을 든다...
"이게 뭐야,
가죽만 남아 가지고 씨..."
옥동의 고향인 목포의 마당리는 저수지가 되었단다... 그런데도 한사코 옥동은 그 자리에 가보고 싶어 했고, 험한 산길을 헤치고 변해버린 고향 마을을 방문한다. 어머니와 아들은 여러 대화를 나누는데, 옥동의 삶이 참 기구하다 싶다... 어린 나이에 부모, 오빠도 잃었고... 그 삶이 참 외롭고 고단했을 듯하다. 발목을 다친 옥동이 다리를 절자, 보다 못한 동석은 어머니를 업는데... 너무 가볍다...
미안하단 말 한마디 없지만.
"미친년이... 어떵 미안한 걸 알아...
느 어멍은 미친년이라...
너 나 죽으면...
장례도 치르지 말라...
울지도 말라... "
고향 마을에 다녀온 후, 차 안에서 동석은 오랫동안 쌓아뒀던 물음들을 쏟아낸다. 그때 왜 그랬냐고, 엄마가 아들에게 어떻게 그러냐고, 나한테 미안하지 않냐고... 옥동은 여기서 '미안하다'는 말을 하지 않는다. 젊은 옥동은 세상물정 모르고 순진했고, 그저 아들이 세끼 밥 챙겨 먹으면 되는 줄, 학교를 다닐 수 있으면 되는 줄 알았던 것 같다. 그 시절 어머니는 자신의 방식대로 참고 희생하며 아들을 지켜왔던 것.
옥동의 방식은 이러하다. '미안하다'는 말 한마디 없지만, 분명히 이 장면들은 아들에게 사과하는 모습으로 느껴지며, 동석은 늙은 어머니의 이런 투박한 사과로도 오랫동안 쌓아왔던 원망들이 녹아내리는 것 같다.
눈 내리는 한라산.
"가보고 싶어, 한라산?"
"가보고야 싶지..."
동석의 태도는 한결 부드러워진다. 오랫동안 엄마에게 묻고 싶었던 것들에 대한 대답을 들었으니 그럴 만도 하다. 동석에게도 엄마와 같이 있는 시간들이 소중해진다. 암환자가 먼 거리를 다니고, 오래 걸어서 그런지 옥동의 몸 상태가 안 좋아지고, 병원에서는 입원하기를 권유하는데, 한사코 옥동은 제주로 돌아가고 싶어 한다. 제주로 가는 배안에서 글자를 모르는 옥동의 옆에서 동석이 여러 단어들을 유리창에 적어주는 장면이 있는데, 여기서 한라산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살면서 언제가 제일 좋았어?..."
"너랑... 한라산 가는...
지금."
제주도에서 평생 살아온 옥동이 한라산 한번 못 올라가 봤다는 게 맘에 걸렸는지, 옥동이 잠든 사이에 동석은 차로 갈 수 있는 한라산 입구로 옥동을 데려간다. 구경만 시켜주려는 의도와는 다르게, 옥동은 백록담을 보고 싶어 했고 이렇게 어머니와 아들은 한라산을 오른다. 동석은 이미 어머니에 대한 원망이 사라진 것 같고, 삶이 얼마 남지 않은 어머니와의 모든 순간들이 소중한 듯하다.
표현이 서툰 이 어머니와 아들의 에피소드는 보고 있으면 모든 대화, 모든 장면들이 먹먹하다... 옥동과 동석의 역을 연기한 김혜자, 이병헌 배우의 연기를 보면, 왜 이들이 대한민국 최고의 배우로 불리는지 알 수 있다.
지켜지지 못할 약속.
하지만 역시나 고령의 암환자에게 한라산 등반은 무리였고, 동석이 혼자 산에 올라 백록담을 사진으로 담아 오겠다 말한다. 홀로 산에 오르며 동석은 어머니와의 아픈 과거들을 회상한다... 그런데 정상에 거의 오른 동석의 눈에 팻말이 하나 보인다. 눈이 많이 내려서 백록담까지는 올라가지 못한단다.
"나중에... 눈 말고, 꽃 피면 오자...
엄마랑 나랑... 둘이.
내가 데리고 올게...
꼭."
저만치 백록담이 보이는 자리에서, 동석은 옥동에게 보여줄 동영상을 남긴다. 꽃 피는 계절이 돌아오면 함께 오자는... 지켜지지 못할 슬픈 약속을 하는 동석의 눈에는... 눈물이 가득 고인다.
동석이 된장을 먹지 않았던 이유.
"있잖아, 나 사는 데...
한번 가볼래?..."
긴 여행을 끝내고, 동석은 조심스럽게 묻는다. 살고 있는 집에 한번 가보지 않겠느냐고. 이렇게 선아와 함께 꾸민 집에 처음으로 옥동이 방문하고, 동석은 여기서 자신이 사랑하는 여자를 어머니에게 소개하기도 한다. 이제야 이런 소개를 하고, 이런 살가운 말들을 하는 모습이 참 따뜻하면서도 안타깝다.
"내일 아침에 '된장찌개' 끓여놔요,
먹으러 올게."
"싫댄 하더니... 된장찌개?"
"어멍건 맛있어...
다른 건 맛이 없어서 안 먹은 거..."
어머니 집에 들러서 이부자리까지 펴주는 동석, 며칠 전과는 많이 다르다. 극 중 동석은 된장찌개를 먹지 않는데 그 이유가 이 장면에서 나온다. 그동안 동석은 엄마가 끓여주는 된장찌개가 그리웠나 보다. 동석이 가고 난 후, 옥동은 미소를 띤 채, 잠이 든다. 그리고 새벽에 일어나 된장찌개를 끓이는 옥동의 모습이 비친다.
"엄마..."
아침이 되어 집에 들른 동석은 옥동이 만들어 놓은 된장찌개를 보게 된다. 그런데 동석이 왔는데도 엄마가 너무 곤히 잔다... 이 된장찌개를 마지막으로, 그렇게 옥동 할머니는 영영 깨어나지 않으셨다. 동석은 죽은 어머니를 끌어안고 한참을 서럽게 통곡했다.
죽은 어머니를 안고 울며
난 그제서야 알았다.
난 평생...
어머니 이 사람을 미워했던 게 아니라,
이렇게 안고 화해하고 싶었다는 걸.
난...
내 어머닐 이렇게 오래 안고
지금처럼 실컷 울고 싶었다는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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