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감독 : 스티븐 달드리
- 개봉일 : 2009.03.26
- 상영시간 : 123분
- 누적관객수 : 약 45만 명
- 국내 등급 : 청소년 관람불가
- 장르 : 로맨스/멜로/드라마
- 출연 : 케이트 윈슬렛, 랄프 파인즈, 데이비드 크로스 등
'스티븐 달드리' 감독의 걸작.
'스티븐 달드리' 감독은 '빌리 엘리엇', '디 아워스', '더 리더: 책 읽어주는 남자'로 아카데미 '감독상' 후보로 세 번이나 노미네이트 된 영국의 유명한 영화감독이다. 뛰어난 영상미와 작품성에 있어서 완성도 있는 작품으로 유명하다. '더 리더: 책 읽어주는 남자'는 스티븐 달드리가 2008년 공개한 작품이며, 이듬해인 2009년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주연인 '한나'를 연기한 '케이트 윈슬렛'이 이 작품으로 '여우주연상'을 수상한 바 있다. 그녀는 이 작품에서 수상에 걸맞은 매우 인상적인 연기를 보여준다. 작품은 '베른하르트 슐링크'라는 '독일 작가'의 동명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다. 소설 또한 세계적으로 널리 판매된 베스트셀러이며, 미국에서만 100만 부 이상 판매되었다고 한다. 작품은 기본적으로 두 남녀의 사랑이야기를 다루는 듯하지만, 한 여자의 기구한 사연을 바탕으로 무거운 철학적 메시지를 전하고 있는 걸작이다.
사춘기 소년의 강렬한 첫사랑.
"꼬마야...
일어나... 괜찮아..."
(마이클을 안아주는 한나.)
작품은 '마이클'(랄프 파인즈)이라는 어느 중년 남자의 과거 회상으로 시작된다. 어린 마이클(데이비드 크로스)은 고등학생이다. 어느 비 오는 날 전차를 타고 하교를 하는데, 마이클의 안색이 매우 안 좋다. 급하게 전차에서 내려, 비틀거리며 건물벽에 기대서서 구토를 하는데, 몸이 많이 좋지 않은 듯하다. 집에 들어가던 중 이를 본 '한나'(케이트 윈슬렛)라는 30대 여인이 마이클을 다독거리고 안아주며 집으로 보낸다. '성홍열'이라는 열병에 걸린 마이클은 집에서 쉬며 회복한 뒤, 감사의 인사를 하러 한나를 다시 찾게 되면서부터, 그가 앓은 열병만큼이나 강렬한 '첫사랑'을 하게 된다.
마이클과 한나, 그들의 '거래'와도 같은 관계.
"꽤 잘하더라."
"뭘요?"
"책 읽는 거... 왜 웃어?"
"난 잘하는 게 없는 줄 알았어요."
열병이 낫고 난 다음에 한나를 찾아간 마이클은, 그녀와 동침하게 된다. 어린 사춘기 소년의 첫 경험이었고, 이는 엄청나게 강렬한 기억이었음에 틀림없다. 이렇게 둘은 가까운 관계가 되어 가는데, 도통 그녀는 자신에 대한 이야기를 마이클에게 잘하지 않는다. 비밀이 많은 여자다. 그리고 이들의 관계에서 특이한 점이 보이는데, 한나는 항상 학생인 마이클의 학교생활이나, 그가 배우는 것들에 관심을 가진다는 것이다. 마이클은 한나에게 푹 빠져있는 모습이며, 한나와 만나는 횟수가 늘어남에 따라, 침대에서 사랑을 한 후, 그녀에게 그날 학교에서 배운 것이라든지, 문학 작품을 '읽어주는' 모습들이 자연스러워진다. 그녀는 마이클이 읽어주는 책의 이야기들을 듣고, 거기에 공감하기도 하고 슬퍼하기도 하는 등 깊게 몰입하는 모습을 보인다. 이런 모습들은 한나가 글을 읽지 못하는 '문맹'이기 때문에 보이는 모습들이다. 이렇듯, 이 둘의 관계는 온전히 사랑하는 남녀의 모습으로 보인다기보다는, 한나의 필요에 의한 '거래'와도 같은 모습들을 보인다.
"골랐어요?"
"네가 시켜... 같은 걸로 할게..."
둘은 이렇게 관계가 가까워지며 단 둘이 여행을 떠나기도 하는데, 어느 식당에서 메뉴판을 든 한나의 곤란해하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메뉴판을 읽지 못해 당황하며, 옆 테이블의 아이들이 메뉴판을 보고 있는 모습을 바라보는 장면은 케이트 윈슬렛의 표정연기가 돋보이며, 아주 안타까운 장면이다. 한나는 자신이 글을 읽을 줄 모른다는 사실을 마이클에게 이야기하지 않으며, 자신의 이러한 사정을 남이 알게 되는 것을 극도로 꺼리는 모습이다.
"한나, 잠깐만...
자네 근무기록을 살펴봤는데, 아주 성실하더군.
'사무직'으로 옮겨.
승진하는 거야, 축하하네."
어느 날, 전차의 검표원으로 일하는 한나는 상관으로부터 이야기를 듣게 되는데, 현장직에서 '사무직'으로 부서를 옮기라는 이야기다. 승진하는 그녀의 표정이 굳는다. 그녀는 글을 읽지 못하는 문맹이라는 사실을 들키고 싶지 않았고, 그것은 그녀를 잠적하게 만든다. 그녀에게는 일자리를 잃는 것보다 이 사실을 들켰을 때 느낄 수치심이 더 큰 문제였던 것 같다. 어느 날, 그녀는 마이클에게 아무런 이야기도 하지 않은 채, 어딘가로 떠나버린다. 이렇게 마이클은 사춘기 한때의 강렬한 첫사랑을 갑작스럽게 끝내게 된다.
법정에서 그녀를 다시 보게 되는 마이클.
"1943년에 친위대에 들어갔죠?"
"네"
"친위대에 들어간 이유는?
당시 지멘스에서 근무하고 있었죠?"
"네"
"승진까지 했는데 왜 친위대에 자원했죠?"
"사람을 뽑는다고 들었어요..."
"어떤 일을 하게 될지 알았습니까?"
"감시원 이랬어요... 그래서 지원했죠."
"아우슈비츠에서 근무를 시작했죠?"
"네"
몇 년 후, 대학생이 된 마이클은 법학을 전공하고 있는데, '나치 전범'들의 재판이 열리는 곳을 참관하는 세미나에 참석하게 된다. 그런데... 피고들의 이름 사이로, '한나 슈미츠'라는 이름이 들린다. 마이클은 갑자기 사라졌던 그녀를 여기서 보게 된다... 그녀는 마이클을 만나기 이전, 과거 나치가 집권하던 시기에 유태인 수용소에서 일을 한 적이 있었던 것이다. 그녀는 마이클과 만나던 그 시기에 그랬던 것처럼, 과거에도 일하던 직장에서 승진을 하고 문맹이라는 사실을 들킬 상황이 되자, 단순히 할 일을 구하기 위해 나치의 친위대에 지원해 일을 한 적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한나는 무지했고, 나치의 친위대에 속해, 유태인 수용소에서 근무를 한다는 것이 어떤 의미를 가지는 지 전혀 몰랐다...
"한나 슈미츠는 방식이 달랐어요.
음식을 주고, 잠자리도 내줬어요.
나중에 알고 보니,
큰 소리로 '책을 읽게' 시켰다더군요.
그녀를 위해 읽어준 거죠.
처음엔 한나가 감시원 중에
가장 인간적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녀는 친절했죠.
몸이 약하거나 아픈 수감자를 잘 보살펴주고는
결국 '아우슈비츠'로 보내더군요...
그게 친절인가요?"
재판이 진행되며, 수용자들을 이동시키던 중, 전투기의 폭격으로 인해 교회에 갇혀 죽은 수백 명의 유태인들에 대한 살인 혐의로 한나를 포함한 6명의 당시 나치의 감시관들이 피고로 재판을 받는다. 증인들의 한나의 행동들에 대한 증언들이 나온다. 여기서 수용자들에게 '책을 읽게'시켰다는 말이 나오며, 이를 들은 마이클의 표정에 동요가 생긴다. 그녀는 수감자를 아우슈비츠로 보낸다는 말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았을까... 그녀는 까막눈으로 오랜 세월을 살았고, 그저 노동자로서 시키는 일을 열심히 했을 뿐이다... 수용자들에게 친절했고, 그저 그들을 관리하는 것이 그녀의 일일 뿐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 생지옥에서 살아 나온 증인의 눈물을 보면, 마냥 그렇게 생각할 수 없게 된다. 한나가 그런 사실들을 몰랐다 한들, 결국 그녀는 '유태인 학살'에 손을 보태고 있었으니까.
"다른 피고들이
당신에게 불리한 진술을 했습니다.
당신이 '책임자'였다더군요."
"아뇨 전 그냥 '감시원'이었어요."
"이걸 작성했나요?"
"아뇨! 다 같이 의논했어요, 같이 썼다고요!"
"사실입니까?... 필체를 비교해 보죠."
"제... '필체'요?..."
법정에서 어리숙한 모습을 보이는 한나는 다른 피고들의 거짓진술에 '누명'을 쓰게 된다. 단순한 감시관이었던 한나를 '책임자'였다며 모함한다. 결국 판사는 보고서에 있는 필체와 한나의 '필체'를 대조해보려 하는데, 한나는 여기에서도 '자존심'을 택한다. 문맹인 한나가 필체가 있을 리 만무한데, 그녀는 보고서를 자신이 작성했다고 '거짓 자백'하고 만다.
왜 마이클은 '침묵'했는가.
"숨기는 이유가 뭔가?"
"창피해서겠죠..."
"뭐가?... 피고와 얘길 했나?"
"아뇨... 전 못해요..."
재판을 지켜보던 마이클은 그제야 한나가 자신에게 '책을 읽어달라'했던 이유와 그녀의 행동들을 이해하게 된다. 마이클은 한나의 비밀에 대해서 안다. 마이클의 눈에만 보이는 그녀의 '결백함'이다. 하지만 그는 실제 나치가 운영하던 수용소를 방문하기도 했고, 그 참상을 두 눈으로 목격했다... 마이클은 그 사이에서 내내 고뇌하는 모습이 보인다. 한나를 보러 면회까지 가는 모습이지만, 끝내는 한나를 마주하지 않고 발걸음을 돌린다. 이렇게 마이클은 진실 앞에 침묵함으로써 평생 죄책감을 안고 살아간다.
"한나 슈미츠는
혐의를 시인했고 살인을 주동한 바,
'가중처벌'한다.
본 법정은,
'한나 슈미츠'에게
'무기징역'을 선고한다."
이렇게 한나는 누명을 쓰고 거짓자백을 하면서 '무기징역'을 선고받게 된다. 마이클은 내내 진실에 대해서 밝히길 주저하는 모습을 보이다가 결국에는 '침묵'을 선택하는데, 이 침묵에는 많은 의미가 있다고 보인다. 마이클이 한나를 '사랑하는 마음'은, 그녀가 '무기징역'을 받더라도 지켜내고 싶었을 '자존심'을 위해 침묵을 선택했을 것이며, 법조인으로서 '정의'에 관한 관점에서 보았을 때, 그녀가 설사 몰랐다 하더라도 그녀의 행동의 결과가 너무 참혹했기에, '그녀가 징벌받는 것이 정의다'라고 생각해 '침묵'을 선택하지 않았을까. 이렇게 마이클은 한나를 향한 '사랑'일지도, 혹은 '징벌'일지도 모를 '침묵'을 결심한다.
책 읽어주는 남자.
"호머의 '오디세이'.
용사의 이야기를 들려주오, 뮤즈여...
트로이의 도성을 함락하고,
숱하게 방황했으며 지략이 뛰어났던
용사의 이야기를 들려주오..."
그로부터 오랜 시간이 지나고, 어린 청년이었던 마이클은 중년의 변호사가 되어있다. 그에게는 딸이 하나 있었고, 결혼생활에는 실패한 듯 보인다. 연애를 하고, 결혼을 했지만 그는 한나가 아닌 그 어떤 여인에게도 자신의 마음을 온전히 보일 수 없었던 듯하다. 아내와 이혼한 듯 보이는 어느 시기에, 그에게는 아픈 기억이 많을 고향에 방문해 자신의 예전 물건들을 둘러보는 모습들이 보인다. 그러던 중 그 옛날, 자신이 한나에게 읽어주었던 '오디세이'라는 책을 보게 된다. '오디세이'라는 이 작품은 한나와 마이클의 삶을 은유하는 듯하다. 신탁을 받고 거친 운명에 휩쓸리며 모험을 떠났다가 고향으로 돌아오는 '오디세우스'의 귀환기를 보듯, 이들이 돌아오는 곳도 결국 '과거에 대한 직시'였다.
그리고는 무슨 생각이 들었을까. 책을 읽는 자신의 목소리를 카세트테이프에 녹음해, 수감되어 있을 한나에게 보내주기 시작한다. 이렇게 그는 열다섯의 자신이 그랬던 것처럼 다시금 한나에게 '책 읽어주는 남자'가 된다. 긴 수감생활동안 영혼이 없는 삶을 살았을 한나에게 다시 웃음이 보이기 시작한다. 어찌 보면 마이클의 이러한 행위들은, 내내 품고 살았을 한나에 대한 사랑으로 보이기도 하며, 또 한편으로는 한나로 하여금 무지에서 깨어나라며 종용하는 모습으로 보이기도 한다.
'깨달음'에서 오는 '고통'.
"개를 데리고 다니는 여인.
저자 '안톤 체호프'.
개를 데리고 다니는 여인이 해변에 나타났다..."
"책을 빌리려고요..."
"어떤 책?..."
"... 개를 데리고 다니는 여인."
"이름이?"
"... '한나 슈미츠'요."
그렇게 마이클의 목소리를 들으며, 웃을 일이 없던 그녀에게 웃음이 생기고, 삶의 의미를 찾아갈 때쯤, 그녀는 마이클이 읽어주는 어떤 작품에 귀를 기울인다. '개를 데리고 다니는 여인', 러시아 문학의 거장, 안톤 체호프의 단편소설이다. 어느 중년 남자와 젊은 나이의 유부녀의 '불륜'을 그린 소설이다. 주인공들은 휴양지에서 한순간 불같이 타올랐던 사랑을 잊지 못해 위험한 사랑을 이어가는 내용이다. 어쩌면 한나는 '금기'를 다룬 이 이야기에서 본인들을 발견한 듯하다. 그리고는 생전처음, 책을 읽으려는 시도를 하게 된다. 이 대목은 많은 것을 의미한다. 한나는 '무지'했지만, 그것을 정면으로 마주 볼만큼의 용기가 없었으며, 그 사실이 폭로되는 것을 '무기징역'보다 더 수치스러워한다. 제대로 교육받지 못했지만 자신이 무지하다는 것을 인정하기에는 그녀는 '자존심'이 너무 강한 여자였다. 그런 그녀가 '마침내' 자신의 '무지'를 정면으로 마주할 용기를 낸다.
한나는 마이클의 목소리를 듣고 문장의 음절을 쪼개가며, 혼자서 독학으로 글을 공부하기 시작한다. 삐뚤한 글씨로 마이클에게 짧은 편지도 부친다. 하지만 마이클은 단 한 번도 답장하지 않는다. 한나가 글을 알기 시작했다는 점은, 자신의 과오를 알아가기 시작했다는 것을 대변하는 모습이며, '변호사'라는 직업을 가진 마이클은 '법에 의한 정의'에 대한 대변이다. 그녀에게 어떤 사정이 있는지 알지만, 결국 그는 법에 의해 그녀의 죄를 판단한다는 암시다. 수감되어 있는 한나에게 테이프를 보내주는 때의 마이클은, 그녀에게 연민이나 사랑을 느끼기도 했겠지만, 그녀가 '깨달음'으로서, 지난 일에 대해 '반성'하길 바라는 모습인 것 같다.
"옛날 생각 많이 했어요?..."
"너랑 있었을 때?"
"아뇨... 아뇨, 그때 말고요."
"재판 전에는 옛날 생각 안 했어, 그럴 필요 없었지."
"지금은요?... 기분이 어때요?"
"내 기분은 중요치 않아. 내 생각도 중요치 않고.
죽은 사람은 죽은 거니까."
"배운 게 있을까 궁금했어요..."
"하나 있긴 해... '글'을 배웠지."
한나가 곧 가석방되어 20년 넘게 있었던 감옥에서 출소하게 된다는 사실을 듣게 되는 마이클은, 그렇게 수십 년이 지나 한나를 처음으로 마주하게 된다. 마이클은 한나가 지내게 될 집과 일자리 등과 같이 물리적인 지원을 약속하는데, 한나에게는 이런 것이 중요한 게 아니었다. 한나는 자신의 사정을 이해해 주는 사람이 필요했던 것 같다. 한나의 기가 막힌 사정을 세상에서 유일하게 아는 사람이 마이클이지만, 대화 내용을 보면, 마이클에게서 한나는 이해받지 못하는 것 같다. 그에 반해, 마이클은 과거에 대해 뉘우치지 않는 듯 보이는 한나에게 실망한 듯한 모습이다...
마이클이 다녀간 이후, 한나는 자신의 방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은 채 발견된다. 자신을 가장 잘 이해하는 사람이었을 마이클에게 이해받지 못하는 상황에 절망했을 것이다. 그리고 깨달았겠지... 그저 살아내기 바빴을 그녀에게 억울한 사정이 있다고 하여 용서받을 수 있는 종류의 죄악이 아니라는 것을. 책들을 밟고 올라서는 한나의 모습을 보면, '깨달음'에서 찾아오는 고통은 그녀를 결국 '죽음'에 이르게 한다. 그렇게 그녀는 '무지'에 의해 살아냈지만, 자신의 잘못을 '인식'함으로써 '죽음'을 맞는다. 전재산을 희생자에게 전달해 달라는 유서를 확인한 마이클은 슬픔에 눈물을 흘린다. 이런 한나와 마이클이라는 남녀의 관계는, 독일을 비유하고 있는 듯하다. '무지에 의해 외면했던' 결과는 '나치정권'이라는 끔찍한 결과를 낳았고, 엄청난 비극을 초래했다. '한나의 죽음'이 의미하는 바는, 결국 나치정권이라는 악이 독일인들의 '무지'에 의한 것이라 할지라도, 그들의 천인공노할 악행들은 이해받을 수도, '용서'받을 수도 없다는 의미인 듯하다. 독일인들은 이런 면에서 자신들의 과오를 돌아보려는 노력에 있어서 게으르지 않은 것 같다... 우리와 이웃해 있는 '그 나라'와는 달리 말이다...
'한나 아렌트'의 '악의 평범성'.
"다른 사람의 처지를 생각할 줄 모르는,
'생각'의 무능은
'말하기'의 무능을 낳고,
'행동'의 무능을 낳는다."
이 작품은 독일 출신의 미국 철학자 '한나 아렌트'가 발표한 '악의 평범성'이라는 유명한 저서의 내용을 모티브로 하는 듯하다. '한나'라는 이름도 그렇고, 그녀가 관찰한 '아돌프 아이히만'이라는 독일의 나치전범의 행태를 보면, 비슷한 점이 아주 많다. 극 중 한나의 경우처럼, 아이히만 역시 전범 재판에 회부되고서도 반성하는 기미보다는, '자신의 직책에 충실했을 뿐'이라는 주장을 하여, 이를 지켜보는 이들을 경악에 빠뜨린 바 있다. 자신의 행동이 불러올 결과에 대한 정확한 인지 없이, 그저 전체주의의 부속품이 되어버린 모습이다. 실제로 아이히만은 사적으로는 유태인 학살자라고 볼 수 없을 만큼 아주 친절하고 좋은 사람이었다고 한다... 어쩌면 '악'이라는 것은 평범함 속에 도사리고 있을지도.
'용서'와 '연민'.
"이 돈은 안 받겠어요.
홀로코스트 관련기관에 기부한다면
'그녀를 용서한다'는 뜻인데,
그럴 수도 없고, 그러고 싶지도 않군요."
"문맹 퇴치 기관에 기부하면 어떨까요?"
"좋은 생각이네요... 좋아요."
"한나 이름으로 기부할까요?..."
"알아서 하세요.
'깡통'은 내가 갖죠..."
"감사합니다..."
마이클은 한나의 유언에 따라, 유태인 피해자에게 찾아간다. 한나가 재판 당시까지도 문맹이었다는 말, 어릴 적 그녀와 연인이었다는 말... 그 누구에게도 하지 않았던, 진실된 이야기들을 털어놓는다. 이 장면들에서 용서와 화해의 바람직한 모습에 대해 생각하게 한다. 마이클은 한나가 돈을 모아두던 깡통을 피해자에게 건네는데, 피해자가 '어릴 적, 이런 깡통에 '소중한 것'들을 모아뒀었다.'라고 말한다. 나치정권에 빼앗겼던 '깡통'으로 대변되는 자신의 소중한 것들을 돌려받은 듯한 피해자의 모습이 비친다. 결국 홀로코스트 단체에 돈을 기부하는 '표면적인 용서'는 할 수 없지만, 깡통으로 대변되는 '한나의 진심'은 받아두는 그녀다. 그렇게 그녀는 한나가 남긴 돈을 '문맹 퇴치 단체'에 기부할 수 있게 하는 '연민'을 보여준다. '유태인을 학살'하는 일에 손을 보탠 한나였지만, '무지'에 의한 그녀의 행동은 이 정도의 '연민'은 가질 수 있게 한다...
'악'이란,
뿔 달린 악마처럼
별스럽고 괴이한 존재가 아니며,
'사랑'과 마찬가지로
언제나 우리 가운데 있다.
- 악의 평범성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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