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감독 : 이용주
- 개봉일 : 2012.03.22
- 상영시간 : 118분
- 누적관객수 : 약 411만 명
- 국내 등급 : 12세 이상 관람가
- 장르 : 로맨스/멜로/드라마
- 출연 : 이제훈, 배수지, 엄태웅, 한가인, 조정석, 유연석, 고준희 등
대학교 1학년 신입생, '건축학 개론'수업.
일에 찌들어 회사에서 밤새 일하고 자다가 깬, 현재의 '승민'(엄태웅)의 모습으로 영화가 시작된다. 승민은 건축가로 일하고 있는 모습이다. 어느 날, 사무실로 손님이 한 명 찾아오는데, 승민의 친구란다. 옷차림으로 보아하니, 돈깨나 있으신 강남 사모님 느낌의 젊은 여자다. 승민은 처음에는 누군가... 가물가물해하는 눈치이지만, '양서연'(한가인)이라는 이름을 듣고 이내 누군지 알아챈다. 일부러 모른 척했는지 아니면 정말 몰랐을지는 잘 모르겠지만,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일부러 모른척한 '심술'같은 것 같기도? (후에 생일까지 기억하고 있는 걸 보면, 절대 몰랐을 리 없다. 승민의 마음속에 서연은 항상 존재했을 테니까.)
"아... 나 몰라... 세요?...
그... 대학교 '1학년' 때... '양서연'...
우리 '정릉'에서... 나 '음대'!..."
"아, 그게...
얘가 하도 나를 막 쫓아다녔었거든요."
"하... 이건 또 무슨 창의적인 소리일까, 이게."
어쨌든, 이렇게 승민을 찾아온 서연은 고향인 제주도의 본가를 새로 리모델링할 생각이었고, 대학교 동창이자, 건축가였던 승민을 찾아오게 되며, 십수 년 만에 둘은 얼굴을 마주하게 된다. 둘의 과거를 궁금해하는 '은채'(고준희)의 질문에 '건축학개론' 첫 수업날의 장면이 비친다.
'건축학개론'수업의 개강일로 보이는 강의실, '서연'(배수지)은 첫 수업부터 지각이다. 강의실 문을 열고 들어와 앉는데, '승민'(이제훈)은 이런 서연의 모습을 뒤돌아 빤히 쳐다본다. 첫 수업의 내용은, 각자 자신이 살고 있는 동네에서 학교까지를 선으로 지도에 표시해 보는 모습이다. 서연이 먼저 그어 놓은 선을 따라, 그대로 겹쳐지는 승민의 빨간 선은, 이들이 같은 동네에 산다는 것을 나타내주며, 앞으로 이 둘 사이가 묶이게 될 것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장면이다.
'숫기'도, '자신감‘도 없는 '승민'
'건축과'에 다니는 갓 스무 살 된 대학생, 소년의 느낌이 채 가시지 않은 '승민'. 작품은 흔히 말하는 남중, 남고, 공대, 군대의 빌드를 탄 것이 거의 확실해 보이는, '사랑'이라는 감정에 절대 능숙할 수 없는 남자 캐릭터를 주인공으로 한다. 비교적 많은 수를 차지하는 '첫사랑에 능숙하지 못했던 과거'를 가진 '일반 남자'들의 향수를 자극하는 인물이다. 개인적으로, 이제훈 배우는 승민이라는 캐릭터를 설명하기에 아주 적합한 캐스팅인 것 같다. 분명히 훈훈하고 잘생겼는데, 숫기 없는 소년과도 같은 이미지가 정말 잘 표현된다. 누가 봐도 서연을 좋아하는 모습이고, 이런 감정이 매우 낯설고 혼란스러운 모양새다.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를 몰라 어쩔 줄을 몰라한다. '숫기'도 없고, 자신보다는 부잣집 선배를 서연이 더 좋아할 것이라는 막연한 열등감을 보이며, '자신감'도 없는 순수하지만 찌질한, '일반남자'들의 전형적인 과거의 모습이다.
그런데 이런 점들을 마냥 나쁘다고만 볼 수도 없는 게... 이건 남자와 여자의 생각에 근본적인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이런 류의 남자들은 악의 없이 방법을 '정말로 몰라서' 그러는 거다. 이런 부분에서 보면 남자라는 종족이 한없이 단순하기 때문에, 순백의 도화지와도 같다. 그런데 승민의 경우에는 이런 상황들이 처음이다 보니, 적극적으로 표현하는 것에도 서툴기 때문에 '총체적 난국'이다. 약간이라도 돌려서 말하고 행동하면 전혀 못 알아듣는다. 여자들은 특성상, 단도직입적으로, 직설적으로 말하는 화법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표현을 하더라도 변화구를 던지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이런 시기에 이런 남녀가 만나면... 많은 오해가 생길 수 있을 것 같다.
존재감 최고인 씬스틸러 '납뜩이'
영화 '건축학개론'에는, 적은 분량임에도, 주인공들만큼이나 존재감에 있어서 압도적인 '납뜩이'라는 캐릭터가 있다. '조정석' 배우가 연기한 캐릭터인데, 주인공들은 잘 몰라도 납뜩이에 대해서는 잘 알고 있는 경우가 있을 만큼, 이 캐릭터는 조정석 배우의 조연으로서의 존재감을 확실히 보여준 캐릭터다. 극 중에서 승민의 연애를 코치해 주는 살짝 날티 나는 친구다. 조언이랍시고 코치를 해주는데... 뭐 답답한 승민의 모습보다 더 나았을 수도 있겠지만... 그다지 좋아 보이는 코칭은 아닌 것 같다. 남자들이 연애를 하다 보면 이런 식으로 투머치한 코칭을 해주는, 이런 류의 친구가 꼭 한 명씩은 주위에 있는 것 같다... 곧이곧대로 이런 친구들의 말을 들으면... 흠... 잘 될 것도 안될 것 같다. 어쨌든, 조정석 배우의 납뜩이는 특유의 익살스러운 모습으로 작품에서 큰 웃음을 주는 캐릭터다.
"키스야?... 그게 키스야?... 승맹아, 그게 키스야?
음... 키스라는 건 말이야...
봐봐, 자... 그 입술이 딱 붙잖아.
걔 혀, 네 혀가 이렇게 자연~스럽게 들어온다고...
스르~르~ 들어... 뱀처럼, 알지? 스네이크.(?)
#$%@#$%#@$@$%
이게 키스야... 이게 키스야, 네가 한 거는 '뽀뽀'.
만나면 반갑다고 뽀뽀뽀"
"딱 다가가!
그럼 걔가 처음에 무서우니까 뒤로 이렇게 슬슬 물러선다고.
그때 뒤에 벽에 부딪치게 되어있어.
그때 그 순간 네가 오른손으로 벽을 딱! 짚어.
그럼 걔가 완전히 쫄아가지고 '왜, 왜 그래?...'
그때 기습적으로!...
아무 말도 하지 말고 돌아가. 터프하게!
절대 뒤돌아보지 말고.
'뒷모습'이 컨셉이야."
아... 이건 어떻게 텍스트로는 표현이 안된다... '직접 봐야 되는 명장면들'이다. 사진으로 보기만 해도 웃기다...
호의가 익숙한 '예쁜 애', '서연'
저런 승민의 모습과는 다르게, 극 중 보이는 '서연'이라는 캐릭터는... 일단 예쁘다. 꿈이 아나운서라고 했던 것으로 보아, 수수하고 평범한 여자라고 보기에는 거리가 좀 있고, 적당히 관심받으며 예쁜 외모 덕을 톡톡히 보며 살아온 여자라고 보면 될 것 같다. 그렇다 보니, 승민이 자신을 좋아한다는 사실은 '당연히' 알고 있는 눈치이며, 승민의 머리꼭대기 위에 올라앉아있는 모습이다. 승민의 마음을 들었다 놨다, 툭툭 건드리는 것을 즐기는 듯한 모습도 보인다. 극 중에서 승민은 '남자들은 가슴속에 누구나 X 년 하나쯤은 다 가지고 산다'라고 표현하면서 서연에 대한 나쁜 기억을 가지고 있는 모습이 있는데, 표현은 맞는 말 같긴 하나, 글쎄... 내가 보기에 이 경우에는 서연은 아주 적극적이었던 것 같다.
"우리 이렇게 하자!
난 건축과도 아니고, 이 동네도 잘 모르거든.
근데 넌 건축과고, 여기에서 오래 살았고.
그러니까...
우리 숙제를 같이 하는 거 어때?
그럼 공평하지?"
이게 도대체 뭔 소린가... 뭐가 공평하단 건가... 싶겠지만, 서연은 승민이 이미 자신에게 관심이 있다는 걸 알았을 테고, '나랑 친해질 기회를 줄게.' 이런 느낌이었던 것 같다. 실제로 승민에게도 설레는 제안이었을 거고. 실제 승민에게 먼저 말을 걸어온 것도 서연이었다. 서연이 아무런 행동을 하지 않았으면, 혼자 속앓이만 했을 승민이었을 거다.
과제를 하러 같이 여행 갔을 때도, 생일을 같이 보낸다거나, 잠든 서연에게 승민이 입을 맞추는 장면에서도 바로 일어나서는 아무 거부반응도 없었다는 점과 같이 여러 부분에서 서연은 승민에게 시그널을 계속 보내고 있다.
거기다 결정적으로, 이사 후에 집으로 승민을 초대하는 장면에서, 처음 놀러 온 손님이라고 강조하고, 서연은 '첫눈이 오는 날', 둘만 아는 장소인 '폐가'에서 만나자고 말한다. 이 정도까지 했으면, 서연은 진짜로 할 만큼 한 것 같다.
"그럼 '첫눈' 올 때,
너네 동네 그 '빈 집' 있잖아, 거기서 보자."
엇갈리는 인연, 현실적인 첫사랑의 모습.
승민이 서연을 좋아하는 모습은 순수하기 그지없지만, 그 방법은 매우 투박하며, 보는 이들로 하여금 답답함을 만들어낸다. 승민은 종강 때, 서연에게 고백을 하기로 마음먹고 집 앞에서 기다리다가, 부잣집 선배가 술 취한 서연을 부축해 서연의 집으로 들어가는 모습을 보고 좌절하며 서연을 '나쁜 년'이라고 혼자 결론 내린다. 영화 '건축학개론'에 대한 의견들을 보면, 왜 이때, '좋아하는 여자를 보호하는 행동을 하지 않았나'라는 의문이 많던데,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승민은 이때까지도, 서연이 자신을 좋아하고 있다는 사실을 몰랐다고 생각한다. 승민은 내내 이 '부잣집 선배'에 대한 열등감을 가지고 있으며, 서연이 자신보다 이 선배를 더 좋아할 거라는 생각을 한다. 서연의 마음이 확실하지 않은데, 이런 상황에 '개입할 자격이 없다'라고 생각했을지도 모르겠다. 이렇게 소통의 부재로 인해, 오해가 생겨 엇갈려버리는 관계는 실제에서도 많다고 생각한다. '첫사랑'에 있어서는 더욱 흔한 일일 것 같고...
현재의 승민은 과거에 서연에게 집을 지어주겠다던 약속이 마음에 걸렸는지, 다시 마주한 첫사랑에 대한 남겨진 마음이었는지 모르겠지만, 무리한 일정을 소화하면서도 서연의 제주도 집을 성의를 다해 지어 준다. 공사가 끝난 날 밤, 이야기를 하다 결국 각자가 서로의 첫사랑이었음을 듣게 된다. 하지만 여기서도 극적인 재회 같은 건 없다. 약혼자가 있는 승민, 이혼경력이 있는 서연. 둘은 그 시절의 감정을 다시 일으켜 세우기엔, 잃을 것도 많고 상황도 많이 변했다. 승민은 약혼자와 한국을 떠나고, 서연은 제주도의 집에서의 모습으로 영화는 마무리된다. 결국 다시 돌려받는 CD속, '전람회'의 '기억의 습작'이라는 곡의 가사처럼, 그렇게 살다가 한 번씩 생각은 나겠지만, 또, 어릴 적 자신이 상대에게 어떤 의미였을지 궁금하기도 하겠지만, 그 기억은 기억 속에만 존재하는 것이 어쩌면 더 바람직할지도 모른다고... 작품은 그렇게 말하고 있는 듯하다.
'첫사랑'에 관한 또 다른 추천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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