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공개된 '박해일', '탕웨이' 주연, '박찬욱' 감독의 영화 [헤어질 결심(Decision to Leave)]의 정보, 개인적인 해석과 리뷰를 제공하는 포스팅입니다.
- 감독 : 박찬욱
- 개봉일 :2022.06.29
- 상영시간 : 138분
- 국내 누적관객수 : 약 189만 명
- 국내 등급 : 15세 이상 관람가
- 장르 : 로맨스/멜로/드라마
- 출연 : 박해일, 탕웨이, 이정현, 고경표, 김신영 등
추리극의 가면을 쓴 로맨스물.
'헤어질 결심'
'아가씨' 이후, '박찬욱' 감독이 2022년 발표한 최근작이다. '헤어질 결심'은 박찬욱 감독의 작품답게, 수많은 영화적 메타포들이 빼곡하게 채워진, 작품성에 있어서 뛰어난 영화다. 2022년, 제75회 '칸 영화제'에서 박찬욱 감독은 '헤어질 결심'으로 '감독상'을 수상한 바 있다. 보는 이들의 관점에 따라 다르게 보일 수 있지만, 개인적으로는 '올드보이'와 같은 강렬함은 없었지만, 자극적인 장면연출을 쓰지 않고서도 소재에 대해 깊은 울림을 준다는 점에서 의미 있는 작품이라 생각한다. '헤어질 결심'은 박찬욱 감독의 작품 중에 '이성 간의 사랑'이라는 소재를 가장 심도 있게 표현한 작품이 아닌가 싶다. 앞서 '올드보이'와 같은 작품을 포스팅할 때와 같이, 개인적으로 생각했을 때, 작품의 '가장 큰 줄기'라고 생각되는 부분들만 짚겠다. 하나하나 뜯어보다가는 논문을 써야 할 테니까. 작품은 기본적으로 '살해용의자'로 의심받는 여자 '송서래'(탕웨이)와 담당형사 '장해준'(박해일)의 이야기를 그린 '추리극'의 형식을 띠지만, 궁극적으로 다루는 주제는 이들의 '사랑'이다.
'파도처럼 덮쳐오는' 사랑, 해준의 '붕괴'.
"패턴을 좀 알고 싶은데요?..."
작품은 크게, 전반부와 후반부로 나누어진다. 형사인 해준의 수사방식과 심리변화에 따라 이렇게 두 부분으로 나눌 수 있다. 부산지역에서 형사로 근무하고 있는 해준은, 형사로서 매우 유능해 보인다. 동료형사인 수완과의 사격연습에서의 우수한 사격실력에서도 볼 수 있듯이, 실적도 좋고 승진도 빠른 듯하다. '흐트러짐 없는' 엘리트의 모습을 보여준다. 어느 날, 사건이 하나 생기는데, 산에서 추락사한 남자에 대한 사건이다. 남자에 대한 조사를 위해 중국인인 아내 서래를 부르게 되는데, 첫 대면하는 표정에서부터 해준이 서래에게 형사로서의 '의심'이 아닌, 이성으로서의 '관심'을 보인다는 것을 볼 수 있다.
여러 정황들로 보아 형사로서 해준은 의심할 여지가 보이는데도 불구하고 사건을 '자살'로 종결시킨다. 해준의 '관심'을 상징하는 수많은 장치들이 있지만, 개인적으로는 '초밥'이 가장 뚜렷하다고 생각한다. 극 중 해준이 아내(이정현)와 대화하는 장면을 보면, '초밥은 아무거나 먹고 싶지 않다'라는 발언을 하는데, '초밥'이라는, 그것도 아주 깔끔하게 포장되어 있는 '시마스시 모둠초밥'이라는 고급 초밥요리는, 해준의 발언을 두고 생각해 보면, 아무에게나 대접하지 않는 '특별한 음식'이다. 당연히 취조실에서 '형사'와 '용의자'가 마주 앉아 먹을 음식으로 보기에는 매우 어색하다. 취조실에서의 장면들은 일반적인 조사의 장면이라고 보기에는 아주 이질적이며, 맛있는 음식을 먹고, 먹은 자리를 합을 맞춘 듯이 치우고, 치약을 짜주는 등. 이게 취조를 하고 있는 건지, 데이트를 하고 있는 건지 헷갈리는 장면들이다.
애초부터 해준은 서래를 용의 선상에서 배제해 놓고 수사를 하는 듯한 모습을 보이며, 이런 점들은 '냉철하고 이성적인' 엘리트 형사가 사랑에 눈이 멀어 편파적인 수사를 하는 결과를 낳는다. 평소 '운동화'를 신고 다니는 해준은 어느 사찰에서 서래와 만날 때는 '구두'를 신는다. 운동화를 신는다는 것은 뛰어야 할 일이 많은 형사로서 일에 충실한다는 의미를 가진 것 같고, 서래를 만나 구두를 신을 때, 구두끈이 풀려있는 장면이 보인다. 이것은 형사로서의 빈틈없는 모습이 사라지고 서래를 대하는 순간에는 '흐트러져 있다'는 의미로 풀이된다. 중국 요리를 해주는 장면도 그렇고, 한밤중에 면도를 하면서 서래의 집으로 운전해 가는 모습도 그렇다. 작품에는 소개한 것 말고도 수많은 이런 장치들이 있다.
"슬픔이 '파도처럼 덮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물에 '잉크가 퍼지듯이 서서히 물드는'
사람도 있는 거야."
그리고 서래를 의심하는 후배 형사 수완에게, 해준이 하는 말은 작품에서 말하는 '사랑'의 모습을 가장 함축적으로 나타낸 대사인 듯하다. '파도처럼 덮쳐오는' 해준, '잉크처럼 번지는' 서래로 설명이 된다. 이런 모습은 비단 이들뿐만이 아니라, 보통의 남녀가 만나 사랑을 할 때에도 나타나는 보편적인 모습이기도 한 것 같다.
"내가 '품위'있댔죠?
품위가 어디서 나오는지 알아요?
'자부심'이에요.
난 '자부심 있는 경찰'이었어요.
그런데... 여자에 미쳐서...
수사를 망쳤죠.
나는요...
완전히 '붕괴'됐어요..."
결국 간병인인 서래의 일을 도와주러 간 할머니의 집에서 해준은 서래의 범행을 암시하는 정황들을 알게 되고, 극 중 표현으로 '붕괴'된다. '붕괴된다'라는 표현은 경찰로서 품위를 잃고, 자신을 희생하면서, 용의자로 보이는 서래의 의심 가는 정황들을 '묵인'한다는 뜻이다. 여자에 미쳐서 수사를 망쳤다는 해준의 말에, '서래'는 살짝 웃는 듯한 표정을 보이는데, 이런 점들은 자신을 위해 '희생'하는 남자의 모습을 보며, 자신이 '사랑받고 있다'라고 느끼는 서래의 심리를 보여주는 듯하다. 이렇게 파도처럼 덮쳐온 사랑이, 안갯속에 가려진 것들을 발견하고 꺼져가는 해준의 모습이다.
'잉크처럼 번지는' 사랑, 다시 만난 해준과 서래.
이렇게 해준은 '붕괴'되고, '이포'라는 다른 지역으로 전근을 간 모습이다. 서래는 다른 남자와 다시 결혼을 한 듯하다. 그런데, 이포라는 이 지역에서 두 사람은 또 만나게 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서래의 두 번째 남편도 누군가에게 살해당한 채 발견된다. 또다시 사건으로 서래와 얽히게 되어 분노에 찬 해준은, 서래와 이런 말을 주고받는다.
"이러려고 이포에 왔어요?
내가 그렇게 만만합니까?"
"내가 그렇게 나쁩니까?..."
결과적으로 보면, 두 번째 남편은 서래가 죽이지 않았다. 하지만 그녀는 남편을 죽음으로 몰아넣는 '설계'를 한 것으로 보인다. 어쨌든 그녀가 이포로 온 이유는 다른 어떤 이유도 아니라, 해준을 다시 보고 싶었기 때문으로 보인다. 이 장면은 다른 뜻으로 해석될 수도 있겠지만, 해준을 사랑해서 다시 보고 싶어 하는 마음이 그렇게 나쁜 거냐고 되묻는 서래의 모습이 아닌가 생각된다.
해준의 ‘붕괴’ 이후가 후반부라고 보면 될 텐데, 이때부터 해준은 서래를 '의심'하며 수사한다. 초반부에 서래에게 '관심'을 가지며 편파적인 수사를 했다면, 이번에는 반대의 방향으로 편파적이다. 이 부분에서는 초밥이 아니라 '핫도그'다. 핫도그도 취조실에 등장하기에는 어색한 음식이지만, 확실한 것은 고급초밥과도 같았던 '해준의 관심'이 핫도그와도 같이 보잘것 없어졌다는 것이다. 핫도그를 본 서래는 표정이 실망으로 굳는다. 이 부분부터는 해준의 수사방식도 다르다. 평소 원한관계에 의한 정황이 있어, 서래가 혐의에서 자유로울 수 있음에도 서래를 유력한 용의자로 놓고 수사한다. 다른 사람들은 모두 파란색으로 보는 '서래의 원피스'라는 장치도 해준의 눈에는 초록색으로 보인다. 수사에 감정이 개입된다는 것을 설명하는 장치다. 전반부에서 해준이 서래를 관음 하는 듯한 장면들은 이번에는 서래에게서 보인다. 서래는 해준을 몰래 지켜보고, 그와의 추억이 담긴 물건들을 보관하는 등의 모습들을 보인다. 해준의 사랑이 꺼져가고, 서래의 사랑은 잉크가 번지듯 그 이후에 시작되었다.
사실, 서래의 행동들은 줄곧 일관적이다. 애초에 살인사건은 그녀의 관심사가 아니다. 해준은 '사건'에 대해 말하지만, 서래는 둘 사이의 '사랑'에 대해 말한다. '관심'에서 '의심'으로 심리변화가 생김에 따라 행동이 변하는 것은 해준이다. 바다에 던진 핸드폰이 다시 발견되었을 때에도, 서래는 자신이 용의 선상에 오를지 어떨지에 대한 고민은 전혀 없어 보인다. 자신이 범인이 아니라고 해명하지도 않는다. 오히려 증거가 들어있을지 모를, 발견된 핸드폰으로 재수사를 해, 해준을 '붕괴되기 전'으로 되돌려주고 싶어 한다.
해준의 '치우침'을 나타내는 수완과 연수
극 중, 해준의 옆에서 같이 수사를 진행하는 '후배 형사'들이 있다. 부산에서는 '수완'(고경표), 이포에서는 '연수'(김신영)가 그들인데, 그들은 사랑에 빠진 해준과 달리, '일반적인 시각'을 대변하는 인물들이다. 수완은 끊임없이 의심해야 한다고 말하며, 연수는 의심할 필요가 없다는 사실을 이야기한다. 이런 점들은 흐트러짐 없었던 엘리트 경찰, 해준이 사랑에 빠지며 감정의 변화에 따라, 극단으로 치우치는 편파적인 모습들을 극명하게 드러내주는 장치들이다.
해준의 '미결사건', '서래'
"날 사랑한다고 말하는 순간,
당신의 사랑이 끝났고...
당신의 사랑이 끝나는 순간,
내 사랑이 시작됐죠."
서래는 직접적으로 사랑한다는 말을 들은 적은 없으나, 자신을 사랑하는 것임이 분명한, 자기 파괴적인 말과 행동을 보고 해준을 사랑하게 되었지만, 사랑한다 말한 적 없다는 해준의 말에, 사랑의 단서가 사라졌다고 느끼게 된 그녀 역시 해준처럼 붕괴되며, '마침내', 영원히 '헤어질 결심'을 한다. 이런 서래의 모습은, '자기 파괴'와 '희생'이 동반되는 '사랑'이라는 행위의 본질적인 성격을 이야기하는 것 같다.
“난 해준 씨의 '미결사건'이
되고 싶어서 '이포'에 갔나 봐요.
벽에 내 사진 붙여놓고,
잠도 못 자고...
'오로지 내 생각'만 해요.”
극 중, 해준은 '미결사건'에 집착하는 모습을 보인다. 서래와 함께, 미결사건 사진을 빤히 쳐다보는 장면이 있는데, 서래는 아마도 해준에게 이런 존재로 남고 싶었나 보다. 해준의 삶에서 '미결'로 남아버리면, 그래서 해준이 자신을 찾지 못하게 된다면, 매일 쳐다보는 사진들처럼 해준의 마음에 영원히 남아있을 수 있다고 생각했던 게 아닌가 싶다. 어찌 보면 지독하고 소름 끼치는 생각 같기도 하다... 서래가 스스로 묻힌 그 모래사장 위에 서서 서래를 애타게 찾아 헤매는 해준의 모습으로 작품은 끝이 난다.
"저 폰은 바다에 버려요...
깊은 데 빠뜨려서...
아무도 못 찾게 해요..."
"당신 목소리요.
나한테 '사랑한다'고 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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