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감독 : 추창민
- 개봉일 : 2012.09.13
- 상영시간 : 131분
- 누적관객수 : 약 1232만 명
- 국내 등급 : 15세 이상관람가
- 장르 : 드라마/시대극
- 출연 : 이병헌, 류승룡, 한효주, 김인권, 장광, 심은경 등
'두 얼굴'을 가진 군주, '광해군'.
조선의 15대 국왕, '광해군'
'광해군'이라는 인물은 평가가 엇갈리기로 유명한 군주다. 아버지인 선조와는 비교되는 행보로 임진왜란 당시, 많은 전공을 올려 신망이 두터운 세자시절을 보내며, 군주의 자질을 입증하기도 했고, 즉위한 이후에도, '대동법'의 실시라든지, 흔히 '중립 외교'라 불리는, 조선의 실리를 추구하는 외교방식을 보여주며 탁월한 정치적 능력을 보여주기도 했다. 하지만 왕권에 위협이 되는 이복형제 '영창대군'을 살해하고, 그 어머니인 '인목대비'를 폐하는, 이른바, '폐모살제'라는 사건을 시작으로, 무리하게 궁궐 증축을 시도하고, '김개시'라는 상궁에게 빠져 국정을 제대로 운영하지 못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하는 등, 극단의 '양면성'을 보이는 인물이다. 결국 광해군은 '인조반정'의 성공으로 탄핵된 임금이다. '역사'라는 것은 '승자'의 기록이기 때문에, 반대 세력에게 탄핵된 인물인 광해군의 기록이 좋지 않다는 의견도 많고, 임진왜란을 겪은 직후, 조선의 상황에 할 수 있는 최선의 외교적 전략을 보여준 인물이기에, 현재의 시대에서도 재조명이 많이 되고 있는 인물이다. 이렇기 때문에, 많은 매체에서 다루어지는, 참 이야깃거리가 많은 인물이다.
두 명의 임금, 그들의 '가면연극'.
작품은 기본적으로 영국 고전소설인 '왕자와 거지'의 느낌을 가진 클리셰를 보여준다. 외모가 똑같은 인물이 상대의 대역이 되는 설정을 가진 작품은 여러 매체에서 많이 등장하는 클리셰다. 물론 광해군이 대역을 구했다는 설정은 역사적으로는 허구이며, 영화적인 장치일 뿐이다. '폭군'의 모습을 한 '광해'라는 캐릭터와, 왕의 대역을 연기하는 저잣거리의 광대 '하선'이라는 캐릭터는, 평가에 있어서 '양면성'이 보이는 '광해군'이라는 군주를 설명하기에 좋은 설정인 것 같다. 작품에서는 광해군의 성군으로서의 긍정적인 모습은 가짜 임금인 '하선'을 통해서 보여주는 것 같고, 부정적인 폭군의 모습은 본래의 '광해'를 통해 보여주는 것 같다.
극 중, 광해는 암살의 위험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자신과 비슷한 외모를 가진 '대역'을 구하는 모습이 보이며, 저잣거리에서 광대로 살아가고 있는 '하선'이라는 천민을 대역으로 선택한다. 얼마 지나지 않아, 광해가 반대세력의 음모에, 양귀비에 중독되어, 혼수상태가 되며, 대역인 '하선'이 한동안 진짜 왕노릇을 해야 하는 기가 막힌 상황이 발생한다.
광해와 하선의 두 역할을 연기한 배우는 '이병헌'이다. 이병헌은 이 작품으로 사극에 처음 도전했다고 한다.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대배우답게, 1인 2역을 완벽하게 소화해 냈다. 광해와 하선은 뚜렷하게 구분되며, 같은 인물이라는 느낌이 전혀 없다. 가짜임금을 연기하는 하선이, 시간이 지남에 따라 감정이 변화하는 모습도 아주 인상적으로 연기해 낸 것 같다.
거짓임금 '하선'의 인간적인 모습.
이렇게 가짜임금이 된 하선은 임금의 최측근인 '허균'(류승룡)의 도움을 받아 왕노릇을 한다. 임금의 말투와 행동을 따라 하고 적응하는 과정에서 당황스럽고 웃긴 상황이 많이 연출된다. 독대한 자리에서는 허균이 상석에 앉아 있는다든지, '중전'(한효주)과의 모습들 같이, 평소와 다른 행동을 하는 임금의 모습을 재밌게 연출해 냈다.
"목숨을 걸고 임금을 지켜야 할 호위관이 지 마음대로 죽겠다고 칼을 물다니.
그것이야말로 대역죄가 아니고 무엇이냐?
내 목에 칼을 들이댄 거야 열 번이라도 상관없다.
하나, 네 놈이 살아야 내가 사는 것."
이와 함께, 평소 차갑고 냉정한 진짜 임금과는 달리, 가짜 임금인 하선의 '인간적인 모습'들도 보인다. 임금을 가까이 보필하는 호위무사 '도 부장'(김인권)은 평소와 다른 임금을 가장 빨리 알아챈 인물 중에 하나이며, 하선의 목에 칼을 들이대기도 하지만, 이런 하선의 말에 크게 감동받는다. 또, 궁녀들의 식사가 임금이 남긴 수라상이라는 것을 알게 된 하선은, 팥죽만 먹고 수라상을 그대로 물려 궁녀들의 끼니를 챙겨주고, '사월'(심은경)이라는 어린 궁녀의 부모를 찾아주기 위해 노력하는 등, 따뜻한 모습들을 보여준다. 이렇듯, '하선'이라는 인물은 임금의 대역이기 이전에, 매우 따뜻하고 심성이 고운 사람이다. 이런 점들은 임금을 대하는 사람들을 진심으로 충성하게 만드는 모습들이다.
저잣거리 광대의 눈에 보이는 조선의 정치.
"땅 열 마지기 가진 이에게 쌀 열 섬을 받고,
땅 한 마지기 가진 이에게 쌀 한 섬을 받겠다는 게,
그게 '차별'이오?"
처음에는 '허균'의 지시에 따라 임금행세를 하던 하선은, 조금씩 대역으로서의 왕역할에 머물지 않고, 소신을 가지기 시작한다. 허균의 지시를 무시하고, 대동법을 시행하려고 하는 모습이 보이는데, '대동법'은 당시 폐단이 많았던 '공납'에서의 세금 징수를 합리적으로 고치는 개혁이었다. 궁극적으로는 민생의 안정을 도모하는 세금제도다. 저잣거리 광대의 눈으로 봐도 조선의 정치는 불합리한 부분이 많았고, 관리들은 제 밥그릇 챙기기에 급급한 모양새다. 가진 것 없고 못 배운 천한 신분의 하선이 봐도 뚜렷하게 잘못된 부분이 보이고, 나아가야 할 방향이 뚜렷한데, 귀한 신분에 배운 것 많은 관리들은 그런 기본적인 것도 살피지 않는 모양이다. '진리'라는 것은 의외로 복잡하지 않고 단순하다. '바른 정치'는 어쩌면 저잣거리 광대도 할 수 있는 간단한 것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각자의 이해득실이 더해지면, 이런 간단한 진리조차도 모르는 어리석은 정치인들의 모습이 나오는 것이 아닐까? 이런 하선의 모습을 보는 '허균'의 표정에서 고뇌와 사색이 비친다.
울림을 주는 '리더'의 모습, '하선'.
가짜임금으로서의 기간이 길어지면 하선의 목숨이 위태해지는 상황을 잘 아는 '허균'에게, 이제 하선은 단순히 임금의 대역이 아니었던 것 같다. 그가 보여주는 모습들은, 신분의 고하를 막론하고 상대의 존경을 이끌어내는 훌륭한 모습이었고, 어느새 허균도 거기에 감화된 듯하다. 하선을 탈출시키려는 허균은, 신하들의 말에, '경의 뜻대로 하시오.'라는 말만 하고, 마지막 상참을 마친 후, 궁을 떠나 잠적하라고 말한다. 하지만 임진왜란이 끝난 지 얼마 되지 않은 어려운 조선의 상황에서, 관리라는 작자들은 '사대의 예'라는 구실로, 조선의 백성들을 착취하고, 또다시 백성들을 전쟁터라는 사지로 내몰려하는 상황이다. 마지막 상참에서 결국 하선은, 가짜임금이 아니라, 나라와 백성을 최우선으로 하는 '진짜 임금'이 되어있다. '광해'라는 작품을 상징하는 장면이기도 하고, 개인적으로도 깊은 울림을 느낀 명장면이다.
"적당히들 하시오! 적당히들!
대체 이 나라가 누구 나라요?
뭐라?... 이 땅이 오랑캐에게 짓밟혀도 상관없다고?
명 황제가 그리 좋으면 나라를 통째로 갖다 바치시든가."
"부끄러운 줄 아시오!"
"그깟 사대의 명분이 뭐요?
도대체 뭐길래, 2만의 백성들을 사지로 내몰라는 것이오.
'임금'이라면... 백성이 지아비라 부르는 '왕'이라면...
빼앗고, 훔치고, 빌어먹을지언정
내 그들을 살려야겠소.
그대들이 죽고 못 사는 사대의 예보다
내 나라, 내 백성이 열 갑절, 백 갑절은 더 소중하오.
이런 모습을 본 허균은, '또 하나의 임금'을 섬기게 된다. 반대파 세력들의 군대가 궁궐로 들이닥치기 전, 허균은 하선에게 제안을 한다.
"하면... '진짜 왕'이 되시든가...
사월이란 아이의 복수를 하고 싶다면...
백성의 고혈을 빠는 저들을 용서치 못하겠다면...
'백성을 하늘처럼 섬기는 왕'!...
진정 그것이 그대가 꿈꾸는 왕이라면!...
'그 꿈'... 내가 이루어 드리리다."
"난... 왕이 되고 싶소이다...
하지만... 나 살자고 누군가를 죽여야 하고,
그로 인해 누군가 죽어야 한다면...
난 싫소. '진짜 왕'이 그런 거라면...
'내 꿈'은... 내가 꾸겠소이다."
혼수상태에서 깨어난 광해는 다시 자리를 찾게 되고, 이렇게 짧았던 그들의 연극은 끝이 난다. 역사에 기록되지 않을 '또 한 명의 왕'은 제 자리를 찾아 '하선'이라는 이름으로 떠나가고, '도 부장'은 '진짜 왕'을 지키다 최후를 맞이하고, '허균'은 '왕이 된 남자'에게 예를 표하는 모습으로 작품은 마무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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