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감독 : 데이비드 핀처
- 개봉일 : 2009.02.12
- 상영시간 : 166분
- 누적관객수 : 약 174만 명
- 국내 등급 : 12세 이상 관람가
- 장르 : 로맨스/멜로/판타지
- 출연 : 브래드 피트, 케이트 블란쳇, 터라지 P. 헨슨, 줄리아 오먼드, 틸다 스윈튼, 엘르 패닝 등
'거꾸로' 가는 시계.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
제목에서 작품의 내용을 대놓고 설명한다. '거꾸로 흐르는 시간을 살아가는 남자'라는 설정 자체에 집중했다면, 제목을 이렇게 내놓지 못했을 거다. 하지만 이 작품은 단순히 이런 남자의 특이성에 집중하지 않는다. 역설적이게도, 이런 특이한 남자의 인생을 놓고, 보편적인 인간의 삶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작품은 '위대한 개츠비'를 쓴 저자로 유명한 'F. 스콧 피츠제럴드'의 단편소설을 원작으로 한다. 하지만 원작의 내용과는 많이 다르다고 하며, 노인으로 태어나 역방향의 인생을 산다는 설정만 가져와, 다른 이야기를 만들어 냈다고 한다. 원래 원작의 내용은 '블랙 코미디'적 성격이 강하며, 당시 세계대전이 끝나고, 마냥 어린이로만 살 수 없었던 아이들을 노인에 비유하며 신랄하게 사회비판을 담고 있는 작품이라고 한다. 반면에 영화에서는 주인공 벤자민의 삶을 통해, 인간의 인생사와 죽음에 대한 깊은 통찰을 담고 있다. 주로 우울한 분위기의 작품세계를 갖고 있는 '데이비드 핀처' 감독의 작품 중에, 비교적 밝은 느낌의 작품이라는 점도 눈여겨 볼만한 점이다.
'노인'의 모습으로 태어난 아이.
"나의 특별한 삶을 아직 기억이 날 때 적어둔다.
내 이름은 '벤자민'... '벤자민 버튼'.
난 남들과 다르게 태어났다.
1차 세계대전이 끝나, 모두가 축제에 휩싸인 기쁜 밤이었지..."
임종이 얼마 남지 않아 보이는 한 할머니는, 어떤 일기를 딸에게 읽어달라고 한다. 일기의 주인인 '벤자민 버튼'이라는 남자의 이야기는 이렇게 시작된다. 집으로 급하게 들어오는 '토머스 버튼'이라는 남자는 아이를 출산한 아내에게 아이를 잘 돌봐달라는 유언을 듣고, 아내를 잃게 된다. 아이를 확인하고 토머스는 경악을 금치 못한다. 아이는 주름이 가득한 노인의 모습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태어난 아이를 괴물로 생각한 토머스는 아내의 유언에도 근처의 요양원에 아이를 버리고 온다. 아이를 발견한 요양원의 운영자 '퀴니'는 아이를 갖지 못하는 몸이었기 때문에, 이런 아이라도 신의 축복으로 여긴다. 이렇게 아이는 요양원에서 살게 되며, '벤자민'이라는 이름을 갖게 된다.
이렇게 요양원에서 살게 된 벤자민은 곧 죽을 노인의 상태라는 의사의 말과는 달리, 점점 젊어진다. 혼자 걸을 수도 있게 되고, 없었던 머리숱도 생겨난다. 벤자민은 또래의 어린아이들보다 노인들이 더 익숙했으며, 생명력 있는 아이들의 모습보다 함께했던 이들의 죽음에 더 익숙한 어린 시절을 보낸다.
작품에서 벤자민을 연기한 '브래드 피트'는 노인에서 시작해, 장년, 청년층의 시절을 보여준다. 작품을 감상하면서 브래드 피트의 나이 든 모습을 짐작해 볼 수 있는 재미도 있다. 브래드 피트의 전기가 담긴 영화라고도 볼 수 있겠다. 청년 시절의 브래드 피트는 눈부신 미모를 자랑하며, 이 작품에서 보여주는 연기 또한 매우 인상적이다. 상대역을 연기한 '케이트 블란쳇'도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감정이 변화해 가는 모습들을 아주 인상적으로 연기해 냈다.
벤자민의 삶, '데이지'와의 사랑.
"1930년 추수 감사절, 내 삶을 영원히 바꿀 사람을 만났다.
그녀의 파란 눈을 잊은 적이 없다."
이런 벤자민의 인생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친 사람은 첫사랑인 '데이지'였다. 가족들이 요양원으로 방문하는 추수감사절. 한 노인의 손녀딸로 요양원에 온 파란 눈을 가진 데이지라는 소녀는 벤자민의 인생에 크게 자리 잡게 된다. 노인의 모습을 가졌지만, 평범한 노인들과는 다르게 말하고 행동하는 벤자민을 데이지 또한 특별하게 생각하는 눈치다. 이렇게 둘은 기억들을 공유해 나가기 시작한다. 벤자민이 바다로 나가 긴 여정을 떠날 때도, 엽서를 주고받으며 서로를 항상 생각했다. 친구처럼 보이긴 했지만, 후에 엘리자베스라는 여자와 사랑에 빠졌다는 벤자민의 엽서를 받은 데이지의 표정을 보면, 데이지에게도 벤자민은 '사랑'이었다.
"내가 고향을 떠날 땐 소녀였던 아이가,
'여자'로 변해 있었다."
시간이 흘러, 데이지는 발레리나로 명예를 얻게 되고, 훨씬 젊어져 장년의 남자가 된 벤자민과 재회하게 된다. 이렇게 둘은 이어지는 듯 보였으나, 데이지를 잃을까 겁이 났던 벤자민은 데이지를 밀어낸다. 벤자민의 아버지가 죽었을 때, 데이지를 찾아가는 모습도 그렇고 여러 장면에서 두 사람은 자꾸 엇갈린다. 벤자민의 특별한 점 때문이기도 했겠지만, 벤자민에게 데이지는 잃기에는 너무나 두려운, 각별한 의미를 가지는 사람이었고, 이렇게 두 사람은 오랜 시간 동안 친구사이로 지낸다.
"우린 살아가면서 끝없이 '상호작용'을 한다.
우연이든 고의든, 그걸 막을 방법은 없다."
"때론 기회를 놓치는 것이, 기회일 수 있다."
개인적으로 아주 기억에 남는 장면이다. 서로를 잊지 않고 떨어져 지내던 중, 데이지는 예기지 못하게 사고를 당하고, 발레를 더 이상 할 수 없게 된다. 이를 두고 벤자민이 독백을 하는데, 그날 데이지를 친 택시기사, 택시를 탄 여자, 택시를 잠깐 멈춰 세운 남자 등 이 사고에 영향을 끼쳤던 모든 상황들이 스쳐 지나가며, 이 많은 상황 중에, 단 하나라도 달랐다면, 택시는 데이지를 치지 않고 그냥 지나갔을 것이라는 말을 한다.
우리가 살면서 겪는 모든 사건들은 끝없이 '상호작용'을 하며 미래의 상황들을 만들어낸다. 어찌 보면 데이지에게는 불행인, '사고를 당한 데이지'라는 상황이 두 사람이 함께하는 미래를 만들어주는 아이러니를 만들어 낸다. 벤자민이 더 나이 들어 보이는 상태였고, 데이지가 더 아름다운 이전의 시기에 두 사람이 맺어졌다면, 금방 헤어졌을 수도 있다. 비슷한 또래로 보이는 이 타이밍에 두 사람은 이렇게 만나게 되고, 과거의 사건들의 상호작용 끝에 두 사람은 가장 적절한 때에, 가장 아름답고 성숙한 사랑을 하게 된다.
두 사람은 뜨겁게 사랑하고, 사이에 딸도 하나 가지지만, 벤자민은 점점 어려질 자신이 평범한 아버지의 역할을 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생각 끝에 벤자민은 데이지를 떠나 여러 곳을 떠돌게 되고, 오랜 시간이 지난 후 데이지와 딸을 보기 위해 한번 찾아온다. 데이지와 딸에게는 이미 평범한 아버지가 되어줄 남자가 있다.
시간이 또 흘러, 데이지가 연락을 받고 찾아간 곳엔 치매증상을 보이는 사춘기소년의 모습을 한 벤자민이 있다. 이런 벤자민과 데이지는 함께 생활하게 되는데, 나이가 들어, 노인의 모습을 한 데이지와 아기의 모습을 한 벤자민이 입을 맞추는 장면은 아주 인상적이다. 이렇게 벤자민과 데이지는 서로의 삶에 항상 존재했다.
벤자민이 살아가며 만났던 사람들.
벤자민은 살아가면서 '사랑'을 알게 해주는 데이지 말고도 수많은 사람들을 만난다. '어머니의 사랑'과 '외로움'을 동시에 알게 해주는 퀴니, '용서'를 알게 해주는 '아버지', '꿈'에 대해 알게 해주는 선장, '도전'을 알게 해주는 '엘리자베스' 등, 많은 사람을 만나 많은 것들을 깨우친다. 그가 '특별'해 보이는 이유는 단순히 노인으로 태어나 아이를 향해 가는 특이성 때문이 아니다. 그가 특별해 보이는 생을 살았던 이유는, 그가 살면서 만나온 인생의 깨달음을 주는 많은 사람들 때문이다. 그런 사람들에게서 배운 지혜로, 비범하지 않은 선택을 하며 살아가는 벤자민이기 때문에, 그의 삶이 특별해 보이는 것 같다. 누군가에게는 이런 진리들이 와닿지 않고 쓸모없는 것이라 여겨질 수 있다. 하지만 이런 만남 속에서 지혜를 찾는 벤자민의 현명함이, 그가 가진 진짜 특별함이다.
삶과 죽음에 대한 철학적 고찰.
"지나간 세월 앞에 미친개처럼 날뛰거나,
운명을 탓하고 욕하며 신을 저주해도 돼.
하지만 결국, 마지막 순간이 다가오면,
받아들이는 수밖에 없어..."
노인에서 아이로 변해가는 벤자민이 사실 특별하다고는 하지만, 혼자의 힘으로 하지 못하는 것들이 많아지는 것은, 노인이나 아이나 별반 다르지 않다. 태어나서 걸음마를 떼고, 첫사랑에 두근거려 보고, 땀 흘리며 일하고, 모험과 도전을 하고, 사랑하는 사람과 정착하는 것. 어느 하나 특별하지 않다. 벤자민은 겉모습이 조금 달랐을 뿐, 관찰해 보면 평범한 사람들이 해가는 과정들을 똑같이 겪으며 살아간다. 결국 인간이라는 존재는 죽음 앞에서 평등하다.
"가치 있다 생각하는 일을 하는 데 있어서,
'늦은 때'라는 것은 없단다.
꿈을 이루는 데 시간의 제약은 없어.
넌 변할 수도 있고, 그 자리에 머물 수도 있지."
작품은 이렇게 평범한 사람과 다른, 노화를 역행하며 사는 사람의 이야기를 설명하면서, 누구에게나 똑같이 주어진 죽음을 겸허히 받아들이고, 그보다 더 중요한, 자신의 삶을 어떤 의미 있는 것들로 채워갈지를 고민하라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 점점 젊어지는 벤자민도 결국은 특별할 것 없는 한 인간의 삶을 산다. 이렇게 작품은 벤자민과 데이지의 생명이 꺼져 가는 모습을 끝으로 마무리된다.
"잘 자, 벤자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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