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기억을 잃은 채, '저승사자'가 된 남자.
"황미영, 25세.
계축년 정사월 을사일 신사시 출생.
무인년 을묘월 기묘일 08시 32분 사망.
사인, 질식사.
본인... 맞으시죠?"
검은 정장을 입은 사내가 도로 한가운데에서 멈춰 선다. 이윽고 차 한 대가 사내를 친다. 엄청난 충격에 차체는 으스러지고, 운전자가 차에서 내린다. 그런데, 도로 한가운데에 멈춘 검은 남자는 생채기 하나 나지 않은 채 그 자리에 그대로 서 있다. 자동차만 박살이 나버린 상태다... 운전자는 검은정장의 사내에게 '너는 멧돼지를 친 거야.'라는 말을 듣고는 이내 자신이 멧돼지를 친 줄 알게 된다. 그리고 검은 정장의 사내는 검은 페도라를 쓰고 모습을 감춘다. 페도라를 쓰면 인간들에게 보이지 않게 된다. 이 사내는 사람의 '기억'을 조작할 수 있는 능력이 있는 듯하다. (기억에 관한 능력은 도깨비에게는 없는, 저승사자만의 고유한 능력이다. 심지어 저승사자는 어느 특정한 상황에, 한 인간의 전생을 보기도 하고, 전생의 기억을 되살릴 수도 있다.) 그런데 사고차량의 트렁크에서 어느 여인의 시신이 발견되고, 그 시신의 주인은 영혼이 된 상태로 비참한 자신의 죽음을 인식하게 된다. 그러던 찰나, 검은 정장의 사내는 여인에게 다가오고, 이렇게 '신원확인'을 한다. 본인... 맞으시죠?
"마셔요...
'이승의 기억'을 잊게 해 줍니다."
화면이 바뀌며, 어느 찻집에 마주 보고 앉은 두 사람. 검은 정장의 사내는 차를 한잔 만들어, 죽은 여인에게 권한다. '망각의 차'. '이승의 기억을 잊게 해주는 차'라는 설정이다. 극에서는 이 찻집이라는 장소를, 수많은 망자가 저승사자의 안내에 따라 거쳐간다.
"안 마시면... 어떻게 되는데요?"
"안 마신걸... 후회하게 되겠죠...
어떤 후회든,
부디 이승에서만 하시길."
이렇게 사내의 업무(?)가 진행된다. 그는 죽은 사람들을 저승으로 인도하는 '저승사자'다. 그가 이 직책을 수행하며 오랜 시간 주로 머무는 이곳은, 죽은 사람들이 천국과 지옥에 가기 전에 들르는 '찻집'이라는 설정이다. 이 찻집에서 아주 중요한 절차를 거치는데, 이는 바로 이승에서의 기억을 지우는 작업이다. 극에서는 '망각'을 '신의 배려'라는 말로 표현한다. 끝난 생의 기억을 안고 사는 것만큼, 의미 없이 고통스러운 것도 없을 것이다. 다음 생을 위한 준비작업? 같은 것으로 볼 수도 있겠다.
"근데, '기타 누락자'는 왜 생기는 겁니까?
아, 전 기타 누락자가 존재한다는 얘기만 들었지,
실제로 처리해 본 적이 없어서요."
"신의 변덕 같은 거야.
인간들은 그걸 '기적'이라고 부르고,
우리들은 그걸 '기타 누락자'라고 하는 거지."
"아... 그럼, 선배님 건도 '기적'입니까?"
"더 특이케이스,
생사부에도, 명부에도 이름이 없어서
어떤 근거로 어떻게 적용해야 될지 모르겠다."
저승사자는 이 사내가 유일한 것이 아니라, 수많은 저승사자들이 존재하는 모습이다. 후배 저승사자에게 업무를 가르쳐 주는 걸 보면, 인간들의 회사생활이나 별반 다르지 않다... 이들은 전생에 큰 죄를 지어, 징벌성으로 긴 시간 동안 저승사자로서 벌을 받고 있다는 설정이며, 공적인 업무(?)에 충실하는 모습이다. 후배 저승사자와 '기타 누락자'에 관한 이야기를 하는데, 이 '특이케이스'라는 처리하기 까다로운 기타 누락자가 바로 도깨비신부인 '지은탁'이다. 그는 지은탁과의 관계가 생기면서, 이 문제를 처리하는데 골머리를 앓게 된다.
"근데 너 왜 이거 이 여자만 주고 나는 안 줘?"
"당신은 기억해야지... 무슨 죄를 지었는지.
사람 쳐서 죽게 한 게, 이번이 처음도 아니고...
처음엔 차 한 잔 못 마신 지금 이 순간을 후회할 거야.
다음엔 차 한 잔 못 마신 이유를 되짚을 거야.
그리고 깨달을 거야.
그 어떤 순간도, 되돌릴 수 없다는 걸.
그리고 넌 이미... '지옥'에 있다는 걸."
차 사고로 죽은 남자와 여자를 대하는 모습을 보면, 망각의 특권은 모든 자들에게 주어지는 것이 아니다. 자신의 과오를 '기억해야 할' 사람에게는 이것이 후회와 고통으로 귀결된다. 아마 갱생의 여지가 있는 존재들은 '저승사자'와 같이, 교화의 과정을 거치는 듯하고, 갱생의 여지가 없는 이런 류들은 '지옥'에 떨어지는 시스템이 아닌가 생각된다. 이렇게 극에서는 저승사자의 활동들이 보이는데, 저승사자의 특이점은, 자신이 죄를 지은 그 생에 관한 모든 것을 잊은 상태라는 것이다. 심지어는 자신의 '이름'조차도 말이다.
'삼신'의 장난, '저승사자'와 '써니'.
"카드?... 현금?... 아, 돈은 누가 낼 거야?
누가 내든... 상관은 없어.
어차피 둘 다,
'아주 비싼 값'을 치르게 될 테니까."
어느 날, 길을 가던 저승사자는 어느 노점상에서 '반지'하나를 보게 되고, 집으려는 찰나, 어떤 젊은 여자가 먼저 집는다. 이렇게, '써니'라는 예명을 쓰는 여인과 만나게 되는 저승사자. 써니를 보자마자 자신도 모르게 눈에서 눈물이 한 줄기 흘러내리는 저승사자의 모습에 써니는 놀라 당황한다. 써니는 허우대가 멀쩡한 저승사자가 맘에 들었는지, 번호를 주면 반지를 양보하겠다고 하지만, 저승사자가 핸드폰을 쓸 일이 뭐가 있을까. 그렇게 통성명을 하고 써니의 번호를 얻으며 다시 만날 여지가 생긴다. 이를 지켜보는 '삼신'의 모습이 보이며, '비싼 값'을 치르게 될 거라는 의미심장한 말을 한다. 분명히 둘 사이에는 뭔가가 있다...
"이쁘게 하고 어디 가게?
혹시, 남친 생겼냐?"
"생기려고 이쁘게 하고 전화 기다려 지금...
안 와, 근데... 왜지?"
"밀당하나 보다."
"밀렸나?...
난 '당겼는데?'..."
아니 도대체 전화번호는 국 끓여 먹으려고 받아간 건지... 허우대 멀쩡한 이 남자는 전화가 없다. 혹시나 싶어 마주친 육교를 서성거려 봐도 엇갈리는 모습의 두 사람이다. 얘네는 항상 이렇다... 저승사자의 모습은 답답하기 그지없다. 오래 사신 '어르신'인 건 알겠는데... 핸드폰은 써본 적도 없고, 만났던 그 자리에서 기다리는 아주 '아날로그'(?)적인 방식을 취한다. 뭐 어쨌든 둘 다 서로 마음이 있긴 있다.
"허... 네, 그쪽도 잘 지내셨어요?
제 반지는 잘 있고요? 여전히 핸드폰은 없으세요?"
"네, 잘 지냈습니다.
반지 잘 있습니다, 핸드폰 없습니다."
"허... 솔직히 말해 보세요. 제 이름 까먹었죠?"
"(후훗) 선. 희. 요."
"선희 아니고 써니요!...
(피식) 진짜... 웃기는 남자네...
혹시 컨셉이예요?... 뭘 봐요?"
"보게 돼요, 웃으니까..."
이렇게 답답한 상황 속에서도 처음 만났던 자리에서 두 사람은 또 다시 만나게 된다. 써니는 아주 저돌적으로 저승사자에게 들이댄다. 어지간히 맘에 들었나 보다. 근데 이 남자... 뭐가 없어도 너무 없고, 몰라도 너무 모른다... 커피 마시자니까 카페에서 정말 커피만 홀짝거리고 있고, 묻는 말에만 정확하게 대답한다. 무슨 시리도 아니고... 의기양양하게 '선희'라고 또박또박 이름을 얘기하는 저승사자의 모습은 좀 귀엽다. 써니는 어이없어 웃으며, 이 하얀 도화지 같은 남자를 어떻게 하면 좋을까... 하는 모습이다. 저승사자는 써니와의 관계가 진행되면서 항상 이런 모습이다. 뚝딱거리기가 이루 말할 수가 없다. 저승사자로서의 업무처리능력을 제외하면 이렇게 멍청해 보일 수가 없는 저승사자다. 하... 일단 잘생기고 봐야 한다. 저렇게 생기면, 무슨 짓을 해도 연애가 잘 되겠구나... 싶다. 이후에는 써니 때문에 생전처음 핸드폰도 써보고, 은탁의 도움으로 예명이긴 하지만, 이름도 '김우빈'이라고 짓게 된다. 이렇게 둘은 조금씩 가까워지기 시작한다.
"써니 씨는 혹시 명함이?..."
"내 명함은 왜요?"
"써니 씨가 어떤 사람인지 궁금해서요."
"저는 얼굴이 명함이에요.
얼굴에 딱 써있죠? 예. 쁜. 사. 람."
"아... 네... 그렇네요... 정말 받아가고 싶네요..."
(써니의 웃음.) "우빈 씨는 뭐 좋아하세요?"
"써니 씨요."
('삐져나오는' 써니의 웃음) "흐... 미친다...
(정색하며) 말고요! 뭐, 취미, 뭐 그런 거요"
"써니 씨요."
('삐져나오는' 써니의 웃음)
이렇게 둘은 달달한 순간들을 연출한다. 후에 종교가 뭐냐는 질문에, 저승사자가 준비되면 다시 연락하겠다며 자리를 뜨려고 하자, 없어도 된다며 죽여버리기 전에 딱 앉으라고 말하는 걸 보면, 이런 저승사자의 태도에 써니도 어느 정도 적응했다. 하지만 뭐가 없어도 너무 없는 이 남자... 써니는 이 남자가 뭐 하는 사람인지 점점 궁금해지고, 우연히 그녀의 손을 잡아 그녀의 전생을 들여다본 저승사자는 그녀의 전생에서 본 것들로 인해 혼란스럽다.
"나도 손도 잡고 싶고,
포옹도 하고 싶어요, 김우빈 씨랑.
근데 적어도 내가 누구 손을 잡는지,
누구 품에 안기는지는 알고 안겨야죠."
이렇게 서로의 차이를 좁히지 못한 채, 둘은 어긋나는 모습을 보여준다. 이 남자가 뭘 숨기고 있는지 그녀는 궁금하고, 남자는 자신이 숨기는 것들을 말해줄 수가 없다. 이렇게 둘은 새해가 얼마 남지 않은 시점에 헤어지게 된다. 하지만 저승사자는 '페도라'를 쓴 채, 그녀를 계속 기웃거린다...
'도깨비'와의 관계, 밝혀지는 진실들.
"써니 씨의 전생 속 얼굴이...
네가 가진 족자 속, 여인의 얼굴과...
같았어."
도깨비 '김신'과 동거를 이어가던 중, 저승사자는 김신의 소지품 중에 의문의 여인이 그려진 족자를 보고 자신도 모르게 눈물을 흘린다. 알고 보니 그 여인은 김신의 '누이'였다. 그녀는 김신이 죽을 당시에 화살을 맞고 같은 날 세상을 떠났다. 무언가 사연이 있는 듯 비치는데... 저승사자가 써니의 손을 잡았던 순간, 그녀의 전생이 그에게 보인다. 써니는 높은 신분을 가진 사람으로 보였는데, 놀라운 것은 김신의 족자 속, 그 여인과 얼굴이 같았다. 써니는 김신의 누이, '김선'의 환생인 것이다. 이를 알게 된 것도 충격적인데 더 놀랄만한 사실은...
"네가 썩어 문드러지던, 그 20년 동안,
알아보지 못할 만큼 컸지... '여'는."
"여의 이름을 한 번만 더 들먹이면..."
"네 놈 곁에 있는 그 저승사자가
누군 줄 아느냐?...
검을 내리고,
그 검을 네놈 가슴에 꽂은 자가 바로 그자다.
그자가 바로... '왕여'다."
김신은 부활한 뒤, 가장 먼저 한 일이 자신을 죽게 한 '박중헌'이라는 간신을 본인의 손으로 죽인 일이었다. 하지만 박중헌은 저승으로 가지 않고 900년 동안 김신의 눈을 피해 이승을 떠돌며 악귀가 되어있다. 900년 만에 그가 김신을 찾아와 밝힌 사실은 충격적이다. 김신이 죽은 뒤, 20년 후에 도깨비로 부활하게 되었으며, 어렸던 왕은 온전히 다 자라나 죽었다. 어릴 때의 모습과 다르기 때문에 서로 알아보지 못할 것이라는 설정이다. 충격적 이게도, '저승사자의 정체'는 바로... 김신을 죽음으로 내몰았던 어린 왕, '왕여'였다...
"역시 나는...
'가장 나쁜 기억'인 모양이다...
'당신'에게서도...
'김신', 그자에게서도..."
이렇게 진실을 알게 된 김신은 왕여가 있는 곳으로 찾아가 목을 틀어잡는다. 원수를 지척에 두고도 모르고 살았던 그의 분노가 느껴지고, 자신의 과오를 알게 된 왕여는 잊고 있던 고통이 밀려온다.
"상장군 '김신'...
'폐하'를 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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