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감독 : 박찬욱
- 개봉일 : 2003.11.21
- 상영시간 : 120분
- 누적관객수 : 약 327만 명
- 국내 등급 : 청소년관람불가
- 장르 : 스릴러
- 출연 : 최민식, 유지태, 강혜정, 오달수, 윤진서, 유연석, 오광록 등
올드보이와 '거장' 박찬욱
'올드보이'. 박찬욱 감독이라 하면 대표적으로 떠오르는 작품이다. 제목부터 인상적이다. 올드보이의 사전적 의미는 '동창생'이라는 뜻이다. 실제 두 주인공은 동창생이다. 그리고 단어를 그대로 해석하면, '늙은 소년'인데... 등장인물을 잘 설명하는 단어인 것 같다. 복수심에 잠식당해 올바른 어른으로 자라나지 못한 겉모습만 늙은 소년과도 같은 모습이 오대수와 이우진, 이 두 남자에게서 묻어나는 느낌이다. 영화 올드보이는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수많은 명장면, 명대사로 널리 알려진 작품이다. 2004년 박찬욱 감독은 칸 국제영화제에서 올드보이로 심사위원 대상을 수상한 바 있다. 이 영화를 기점으로 박찬욱 감독의 이름은 세계적으로 '거장'이라는 수식어를 달게 된다. 이는 한국 영화를 세계에 알린 사건이기도 하다.
사실 올드보이에 관해 자세한 이야기를 하려면 논문과 같은 글을 써야 할 정도로 분량이 방대할 것 같다. 이런 작품성 있는 영화들은 많을 텐데, 특히 올드보이가 주목받는 이유는 작품성뿐만 아니라 굳이 보라고 붙잡아 앉혀놓지 않아도 관객들로 하여금 찾아보게 만드는 흡인력 있는 이야기를 만들어냈다는 데 있다. 영화의 뛰어난 미장센이나 치밀하게 짜인 장치들과 같은, 작품을 해부해야만 보이는 것들을 차치하더라도, ‘미도 테마’로 잘 알려진 ‘The last waltz’와 같은 인상적인 음악이나 다른 영화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독특한 액션씬, 주인공의 복수를 따라가며 느껴지는 긴장감과 결말의 충격까지 더해진 그야말로 수작 중에 수작이다. 특히 배우들의 연기, 그중에서도 최민식의 오대수는... 정말 괴물 같은 마력으로 관객들을 끌어당긴다.
15년을 도둑맞은 남자
이야기는 술에 취한 남자의 모습을 보여주며 시작된다. 남자의 이름은 오대수. 아내와 어린 딸을 둔 직장인으로 보인다. 술에 진탕 취해 경찰서에서 난동을 부리는 진상이다. 곧이어 데리러 온 친구를 따라 경찰서에서 나와 공중전화로 아내에게 전화를 거는데 친구가 잠시 아내와 통화하는 사이, 보라색 우산 하나를 덩그러니 남겨놓고 온데간데없이 사라져 버린다. 그렇게 오대수라는 남자에게 지옥이 펼쳐진다.
깨어난 오대수는 어느 방 안에 감금된 자신을 발견한다. 문에 달린 작은 구멍으로 군만두를 넣어주는 사람의 다리를 붙잡고 꺼내달라고 하지 않을 테니 왜 갇혀있는지 이유나 좀 알자고 처절하게 늘어져도 이유를 알 수 없다. 누가, 어떤 이유에서, 그래서 얼마동안이나 있게 될지 오대수는 아무것도 알 수가 없다. 오대수에게는 조그만 TV 하나가 세상을 바라보는 유일한 통로다. 아내가 죽었다는 소식이 뉴스에서 들리고 용의자로 지목되는 사람은 오대수. 갇힌 것도 억울한데 아내를 죽인 살인 용의자란다. 그 긴 세월 동안 군만두만 먹으면서 살고, 자살시도를 해도 필요에 따라 마취가스가 새어 나오는 방의 구조 덕에 마음대로 죽지도 못한다. 수많은 생각을 하며 살았을 거다. 나를 여기에 가둔 사람이 누구일지, 내가 무슨 잘못을 했을지, 나를 가둔 그 사람을 찾으면 어떻게 만들지...
조그만 수저로 침대 뒤 벽을 파내고 또 파냈다. '한 달이면 나간다. 무조건 나간다. 몇 층인지 알 수 없지만 떨어져 죽는 한이 있어도 무조건 나간다.' 그렇게 처절하게 공들여 만든 도주로를 비웃기라도 하듯, 얼마 뒤 오대수는 여행가방 안에 담겨 어느 아파트 옥상에서 풀려난다. 그렇게 발악을 했는데 이렇게 쉽게 말이다... 15년이다. 30살이던 청년은 45살 중년이 되었다.
빨간색과 보라색
올드보이는 수많은 영화적 장치들을 갖고 있는 영화다. 같은 대사를 다른 인물이 반복한다던지, 극 중 '개미'가 의미하는 바라던지. 모두 설명하기엔 너무 많다. 그중에서도 대표적인 것으로는 '색의 대비'가 많은 것을 상징한다는 것이다. 빨간색은 '분노와 복수심' 같은 것들을 상징한다. 그리고 보라색은 '슬픔, 회한' 과도 같은 것들을 상징한다. 실제로 오대수가 이우진(유지태)을 추적하는 장면들과 같은 등장인물이 분노를 느끼는 장면들에는 어김없이 빨간색들이 등장한다. 빨간 옷, 빨간 중국집 간판, 빨간 벽지 등 영화에서는 빨간 색감이 유독 많이 등장한다. 복수극이라는 특성상 분노가 기반되어 있어 그렇지 않나 싶다. 그리고 보라색은 이와 대비되는 색으로 기능한다. 보라색 상자, 손수건 등 등장인물이 슬픔을 느낄 때 등장한다. 이런 색의 대비효과는 마지막 오대수와 이우진이 만나는 장면에서 극대화되는데, 개인적으로 기억에 남는 장면은 이우진이 보라색 손수건을 들고 입을 막으며 웃음을 참다가 스스로 혀를 자른 오대수가 입에서 피를 흘리자 그 손수건을 오대수의 입으로 쑤셔 넣는 장면이 있다. 단순히 뿜어져 나오는 피를 막으려는 의도로 그랬다고 생각될 수 있지만, 여기에는 큰 의미가 있다. 보라색 손수건이 의미하는 이우진의 슬픔이 복수를 달성함으로써 해소된 듯 보이며, 같은 상황을 겪을 오대수에게 이 슬픔을 전달한다는 의미가 된다. 거기에 피가 흐르며 젖어 들어가는 손수건은 빨간색으로 얼룩지며 오대수가 느낄 분노와 슬픔을 동시에 표현한다고 할 수도 있겠다. 이렇듯 영화는 치밀하게 계산된 장치들이 작품을 더욱 완성도 높게 만들어준다. 이런 장치들은 영화 도처에 무수히 많다.
오대수는요... 말이 너무 많아요
풀려난 오대수는 자신을 가둔 자를 찾기 위해 혈안이다. 풀려난 직후에 횟집에서 만나, 후에 사랑하게 되는 미도(강혜정)라는 어린 여자와, 실종될 당시 같이 있었던 친구 노주환(지대한)의 도움을 받아 실마리를 찾아나간다. 그런데 이 상황들은 이우진의 계산에 모두 포함되어 있었고 이 판의 주인은 이우진이었다. 후에 밝혀지지만 심지어 미도를 만나는 상황까지도 이우진의 '중요한 계획' 하에 있던 것이었다. 그는 힌트들을 하나씩 풀어놓으며 오대수가 자신을 찾을 때까지 유도한다. 추적 끝에 오대수는 한 가지 질문에 대한 답을 얻는다. '오대수는 왜 갇히게 되었나?' 하는 것. 극 중 이우진의 대사 중에 이런 말이 있다.
"오대수는요... 말이 너무 많아요..."
오대수는 기억도 잘 못하는 듯 보이지만 한 사람의 인생을 파괴해버린 말을 한 적이 있다. 오대수와 이우진은 교복을 입던 시절, 동창생이었고 같은 동네에 살았던 적이 있다. 이우진은 사실 친누나(윤진서)와 서로 사랑하는 사이였고, 둘의 모습을 엿본 오대수가 그것에 대해 친구에게 한마디 하고 전학을 가버렸고 그것이 소문을 만들어 우진의 누나는 괴로워하다가 스스로 목숨을 끊는 비극이 일어난다. 그날 이후, 이우진은 오대수를 향한 복수심으로 지금까지 삶을 지탱해 온 것이다.
"명심해요...
모래알이든 바윗덩어리든
물에 가라앉기는 마찬가지예요."
겨우 말 한마디, '모래알'처럼 보이는 작은 한마디에 이렇게 잔인한 복수의 대상이 되었지만, 그 말 한마디는 누군가를 죽게 만들고 또 누군가는 평생 고통 속에 살게 하는 '바윗덩어리' 같은 힘을 가지기도 했다.
복수가 끝나면 숨어있던 고통이 다시 찾아온다
사건의 전말을 알게 된 오대수는 이우진을 직접 만나러 간다. 이 장면에서 또 하나의 중요한 질문에 대한 답을 얻는다. 이 부분이 정말 중요한 사실이다. 이우진도 대사로 설명한다. 중요한 건 왜 가뒀냐 하는 것이 아니라, '이우진은 오대수를 왜 풀어줬느냐?’ 하는 것. 그리고 보라색 상자를 하나 가리킨다. 그 안에는 잔혹한 진실이 들어있다. 앨범이 하나 들어있는데, 오대수와 아내, 어린 딸의 가족사진이다. 페이지를 넘기는데 딸의 성장과정이 들어있다.
그 사진들의 끝에는... 맙소사... '미도'가 있다...
"누나하고 난, 다 알면서도 사랑했어요... 너희도 그럴 수 있을까?"
결국 이렇게 이우진의 복수는 끝나고 그는 숨어있던 고통이 다시 찾아오며, 삶의 목적을 잃어버린다. 말을 남기고 엘리베이터에 타는 장면이 아주 인상적인데, 죽은 누나와 당시 자신의 모습이 보인다. 누나의 손을 놓은 손이 그대로 권총을 장전하고 자신을 향해 방아쇠를 당긴다. 그렇게 이우진은 스스로 세상을 떠난다. 누나를 구하지 못한 자신을 용서할 수 없는 이우진이다. 올드보이의 주요 키워드는 '복수'다. 주인공들의 모든 행동의 의미는 복수로 귀결된다. 박찬욱 감독의 이른바, '복수 3부작' 중에 두 번째 작품이 올드보이이고, 박찬욱 감독은 올드보이를 통해 복수라는 행위의 말로가 어떤지, 그 허무함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다. 결국 복수심을 삶의 동력으로 삼던 등장인물들은 피폐해졌고 진실을 마주한 사람도 끔찍한 사실에 좌절했고, 복수에 성공한 사람도 허무함을 느끼며 삶을 놓았다. 누구 하나 불행하지 않은 사람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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