억척스러운 생선가게 사장, '은희'.
제주도 푸릉의 '섭섭 시장'. 여기서 '생선가게'를 운영하는 '은희'(이정은)는 억척스럽기로 둘째가라면 서운하다. 살벌하게 흥정을 차단하는 모습에서 장사꾼으로써의 면모가 엿보이는데, 이렇게 억척스러운 만큼 은희는 엄청난 현금 보유액을 자랑하고, 거기에 서귀포에 사놓은 건물로도 많은 돈을 벌어들인 '알부자'다. 그녀가 이렇게 장사에 매달리는 이유가 있는데, 어릴 때부터 지지리도 가난한 집에서 태어나 부모님도 일찍 돌아가셔서, 고등학교를 중퇴하고 소녀가장이 되었기 때문. 그녀는 악바리 같이 생선을 팔아 동생들 공부도 다 시킨 독종이다. 이렇게 치열하게 살다 보니 결혼도 못하고 사십 대 후반이 된 안타까운 중년싱글이다.
사는 게 팍팍한 기러기 아빠, '한수'.
SS은행의 지점장으로 근무 중인 '한수'(차승원), 퇴근하고 혼자 좁은 오피스텔 방에서 라면을 끓여 먹는 모습이 처량하다. 제주도 출신이었던 그는, 좋은 머리 덕분에 집안의 기대를 한 몸에 받고 상경해 서울에서 대학을 다녔다. 그리고 취직도 은행으로 했다. 제주도 출신 촌뜨기가 이 정도면 출세했는데, 그의 삶은 참 팍팍해 보인다. 이 시점에는 제주의 푸릉지점으로 좌천되는 듯한 모습이 보이며, 제주로 전근 준비를 한다. 딸이 하나 있는 것으로 보이는데, 아내와 외국에 유학을 가있는 모습이다. 서울의 아파트도 처분하고, 퇴직금도 대부분을 미리 당겨 써서 이 돈들을 모두 골프 선수로 키우려는 딸에게 쏟아붓는 듯하다. 하지만 그다지 눈에 띄는 재능은 아닌 듯하고, 딸과 아내도 재정적인 문제나 여러 상황으로 지쳐서 유학생활을 포기하고 싶어 한다. 그 누구보다 가족을 위해 열심히 살았지만, 아픈 어머니 모시는 일은 동생들에게 떠맡겨야 했고, 처자식과도 떨어져 지내고... 참 보기 안쓰러운 가장이다.
'은희'의 첫사랑, 고향으로 돌아온 '한수'.
"야! 너... 너, 너, 너 설마 한수야?"
"어... 어, 은희야. 나, 나 한수."
한수가 제주도로 전근을 와 첫 출근하는 날, 이렇게 도로에서 한수와 은희는 다시 만난다. 한수는 트럭에 적힌 은희의 전화번호를 사진 찍어가고 둘은 다시 연락할 것을 약속하며 이렇게 스치게 된다. 출근한 한수는 고객들의 리스트를 살펴보던 중, 은희가 현찰 보유액만 12억 9천만 원 상당을 가진 알부자라는 것을 알게 된다. 이후, 오랜만에 가족들을 찾아가는데, 가족들의 반응이 냉랭하기 그지없다. 딸의 유학에 돈을 쏟아붓느라 제주도에 사는 형제들이나 부모에게 신경을 쓰지 못한 한수다. 참... 여러모로 한수는 돈에 쫓겨서 사는 모양새다...
"이야... 한수야, 은희야~ 너네 학교 안 간?
무사 도새기(돼지) 들고 포대 들고 인?(있냐)
이거 팔아 수학여행 갈거라?"
한수와 은희의 이야기는 오래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어린 한수(김재원)와 은희(심달기)가 교복을 입고 다니던 시절, 등교하는 버스 안이 비친다. 집이 가난하다는 공통점이 있는 두 사람은, 등굣길에 각각 새끼돼지와 포대자루를 들고 버스를 타는데, 수학여행을 가기 위해 이것들을 팔려고 하는 것으로 보인다. 철없는 친구들이 이런 모습을 보고 은희와 한수를 놀려대는데, 은희를 가지고 친구들이 조롱하며 놀리자, 참다못한 한수가 친구들을 위협해 자리에 앉힌다. 은희는 이런 한수를 좋아하고 있는 눈치다.
"야... 우리 심심한데 뽀뽀나 해볼까?..."
"... 뭐?(한수의 웃음.)"
"(심술 난 표정의 은희) 나도 담배 줘보라, 펴 보게."
"그러지 마... 착한 놈이... 뭘 봐~ 귀엽게.
가자, 자유시간 끝났겠다."
"나 너 좋아, 나 가져. 아님 널 주든지."
"알았으니까 가자~ 은희야?"
접. 촉. 사. 고.
결정적으로 수학여행에서 사건이 하나 생기는데, 자유시간에 혼자 시간을 보내고 있는 한수를 따라 나온 은희가, 아주 저돌적으로 한수에게 들이댄다.(?) 한수는 그저 귀여운 동생 보듯이 하는 듯한데... 은희는 그게 영 기분이 별로인 듯하다. 오기 같기도 하고, 한수에게 기습적으로 입을 맞춘다.
"야... 내가?... 너를?...
강제로?... 억지로?...
야... 너도 좋아했잖아."
이걸 또 단짝친구인 '미란'(연시우)에게 부풀려서 이야기한 듯 보이는 은희. 미란이는 가만히 있지 못하고 바로 한수에게로 달려간다... 은희는 '한수에게 말하면 죽여버릴 거'라며 위협하지만 들은 체도 안 한다. 이런 재밌는 가십거리가 또 없지. 체육관에서 농구를 하고 있는 한수 앞에 멈춰 선 미란은 '진짜 은희에게 강제로 키스했냐'라고 묻는다. 뒤이어 도착한 은희는 친구들 앞에서 망신당할 생각에 얼굴이 사색이 되는데... 크... 한수는 은희와의 비밀을 지켜준다. 이 시절 한수는 멋진 소년이었다. 이런 옛이야기 들을 은희는 '영옥'(한지민)과 술안주 삼아 이야기하고, 퇴근하고 혼자 집에 있는 한수도 옛 기억에 홀로 흐뭇하게 미소 짓는다.
가장이라는 무게에 짓눌려 가는 '한수'.
"그럼 나...
너 따라 경매장이나 갈까...
집에 가봐야 아무도 없고...
잠도 안 올 거 같고..."
제주도로 내려온 한수는 오랜만에 동창회에 나가며 고향친구들과 술자리를 가진다. 친구들을 오랜만에 봐서 반갑기도 하지만, 한수의 속마음은 항상 돈 문제 때문에 불편하다. 이미 주위 지인들에게 돈 빌려서 갚지 않기로 소문이 날 만큼 그는 신용이 바닥을 치고 있는 상태며, 이제는 돈 빌릴 곳도 없는 것 같다. 가장이라는 무게가 한수를 바닥으로 짓누른다. 이런 상황에 그래도 은희는 한수를 웃게 한다. 한수에게 은희는, 어릴 적 좋았던 때의 기억을 떠올리게 하는 존재인 듯하다. 어차피 집에 가도 아무도 없고, 한수는 은희를 따라 생선 경매를 하는 시장까지 따라나서기도 하는 등, 둘은 함께 시간을 보낸다.
"은희야... 그때 난... 어떤 애였어?"
"성질 피울 땐 터프하고
어쩌다 웃을 때는 따뜻하고 밝고
뽀송뽀송 예뻤지게. 패기도 있고...
그때 우리 다 그랬지게..."
"그렇지?... 가끔 너무 가난이 싫어서
괜히 욱욱하긴 했어도...
그때 난 니들하고 놀 땐,
곧잘 웃기도 했어, 그렇지?...
지금처럼 재미없고, 퍽퍽한 모습은 아니었어..."
이렇게 은희와 시간을 보내다가 바다를 보며 옛 추억에 잠기는 두 사람이다. 교복을 입고 다니던 시절, 바닷가에서 뛰어놀던 어린 한수와 은희는 걱정 없이 즐거워 보인다. 그러다가 한수는 어릴 적 그랬던 것처럼 무작정 바다로 헤엄쳐 들어간다.
"은희야... 나 돈 좀, 돈 좀..."
"한수야! 이제 그만 나오라게."
"은희야!"
"뭐, 무사?"
"우리! 여행 가자!
옛날 수학여행 갔던 '목포'로!"
"뭐, 무사? 목포? 야! 둘이 가면 가게.
시끄러운 인권이 호식이 빼면."
"그래!..."
이 장면에서 차승원 배우의 표정연기가 돋보인다... 차마 '돈 좀' 하는 이야기를 크게 못하고 갈등하는 표정연기가 정말 안타까워 보인다... 사람이 살다가 힘든 일이 생기면, 지나간 과거의 좋았던 추억을 회상하기 마련인데, 지금 한수가 딱 그러한 듯하다. 한수는 그때의 걱정 없는 소년 시절의 자신이 너무 그리운 듯하다... 이후 장면에서 집에서 쉬고 있는 한수에게 딸의 전화가 걸려온다. 돈 문제에 지친 아내와 딸은 골프를 포기하고 싶어 한다. 하지만 한수는 여기에 부은 노력이 너무 아깝다. 어쩌면 딸이 골프선수로 성공하는 것이 한수에게는 인생의 목적이자 의미였을 수 있다... 그만두겠다는 딸을 만류하는 것은 어찌 보면 자기 욕심인 것일지도 모른다. 이때부터인듯하다... 한수가 은희를 보는 눈이 바뀐 시점이. 한수는 적극적으로 은희와의 목포여행을 추진한다. 아내와는 헤어졌다는 거짓말까지 해가면서...
한수와 은희의 '목포 여행'.
이렇게 잘 자라서,
내 찬란한 추억과 청춘을 지켜줘서 고맙다...
마음에 들어."
이렇게 한수와 은희는 목포로 여행을 떠나는데, 목포로 가는 배안에서 자신의 첫사랑이 아직 멋져서 고맙다는 은희의 말을 듣는 한수의 표정이 씁쓸해 보인다. 한수는 이런 은희에게 '돈 얘기'를 어떻게 꺼낼 지 마음속으로 내내 심하게 갈등하는 모습이 보인다.
"아 참, 호식이랑은
사귀었다면서 왜 헤어졌어?"
"하... 야! 이십 년도 더 지난
그 얘기는 또 어디서 들언?"
목포 여행 중, 은희와 한수는 그동안 어떻게 살아왔는지 이런저런 이야기를 많이 나누게 되는데, 사정이 많았을 한수 못지않게 은희 또한 안타까운 사연이 많다. 똑같이 제주에서 살아온 '호식이'(최영준)와 연인 사이였는데, 어린 시절 내내 가난했던 은희는 호식의 가족들을 보고 와서는, 자신과 똑같이 가난한 호식과의 관계가 두려웠던 듯하다. 그렇게 맺어지면 똑같이 가난할 테니까... 그때 이후로 은희는 인생에서 '사랑'이나 '낭만' 같은 단어는 지우고, 오로지 돈, 돈 하며 살아온 것 같다. 호식에게도 항상 미안한 마음을 가지고 있는 듯하다. 이후에 보면, 호식 또한 유일하게 은희를 뒤에서 계속 챙겨주는 사람이다.
"여기는 그대로네..."
"기억하네, 이 골목."
"그럼."
"우리 그때... 이뻤지?..."
"이뻤지..."
이렇게 옛날이야기도 하고, 옛 기억이 있는 장소도 가보는 은희와 한수. 오래된 추억에 반갑고 기쁘기도 하지만, 여러모로 복잡한 표정의 한수다.
"하... 나 서울 갈래, 아빠.
나 이제 진짜 골프해도 안 행복해..."
날이 어두워지고, 호텔방을 따로 잡아 들어가는데, 한수에게 딸의 전화가 온다. 딸은 이제 골프를 그만하고 싶어 한다. 골프를 해도 행복하지 않다고 말하는 딸의 말에 한수는 눈물을 흘리며 무너진다. 물론 딸이 행복하기를 바랐겠지만, 딸의 행복에 자신도 투영했겠지... 딸의 골프 유학을 위해 희생을 감수하고 지인들에게, 가족에게까지 배신자가 된 한수였는데, 하늘이 무너지는 듯하다. 한편, 제주도에 있는 다른 친구들의 연락을 받은 은희는, 한수가 아내와 헤어졌다고 했던 말이 거짓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고, 한수가 지인들에게 돈을 빌리러 다닌다는 사실 또한 알게 된다.
진실을 알게 되는 은희.
"난. 오늘. 지금.
평생 친구 하날 잃었어."
한수는 사실을 들키게 되고, 은희는 한수의 행동에 크게 실망한다. 자신을 친구로 생각했다면, 이런 곳에 데리고 올 것이 아니라, 먼저 돈 얘기를 했어야 했다고. 한수는 은희의 감정을 이용한 꼴이 되어버리고 만다. 한수는 은희에게 진심으로 미안해한다. 이 장면에서 두 배우의 감정 연기는 정말 인상적이다.
"솔직히... 홀가분하지?"
"그러게... 그러네... 근데 미진아.
나중에 보람이가 우리 원망하면 어쩌냐?..."
"원망 들어야지 뭐... 근데, 보람이 말 믿자.
사람 마음 변하잖아.
행복하다가 안 행복해지기도 하잖아..."
"그럼 우리도 지금은 별로지만,
곧 또 행복해질 수도 있겠네?"
이렇게 한수는 혼자 제주도로 가는 배에 타게 되고, 아내와 전화하는 장면이 인상적이다... 한수에게 딸 보람은 한수의 인생 그 자체였던 것 같다. 하지만 이제 조금 내려놓고 살아도 될 듯하다. 골프를 그만둔다고 세상이 끝나는 것도 아니고, 한수의 말처럼 오늘이 불행하다고 내일이 행복하지 말라는 법은 없으니까.
한수와 은희의 '문자 메시지'.
“장사꾼이. 장사하다 보면,
밑질 때도 있는 법.
내 올해 장사 밑졌다 생각하면 그뿐이다.
살면서 밑진 장사 한두 번 하는 거 아니니,
넘 신경 쓰지 말고, 받아.”
은희는 한수의 말이 마음에 걸렸는지, 한수에게 2억 원을 송금해 주며, 이런 말을 남긴다. 제주도로 내려온 한수의 이야기를 뒤에서 안 좋게 하고 다니는 다른 제주 친구들에 대한 오기였을 수도 있고, 어릴 적 추억에 대한 의리 같은 것일 수도 있겠다... 여러모로 정이 많은 은희다. 한수의 아내와 딸이 한국에 다시 돌아오는 모습이 비치며, 한수는 일단 딸과 아내를 데리고 여행을 떠난다. 일단 좀 쉬고 생각하면 되겠지. 은희에게 받은 2억 원은 곧 은희가 다시 돌려받게 된다... 한수가 보낸 장문의 문자메시지와 함께.
“은희야. 돈 다시 보냈다.
살면서 늘 밑지는 장사만 한 너에게 이번만큼은 밑지는 장사하게 하고 싶지 않다.
니 돈은 다시 보냈어도 니 마음 다 받았다.
은희야. 난 이번 제주 생활, 진짜 남는 장사였다.
너, 인권이, 호식이, 명보. 추억 속에만 있던 그 많은 친구들을 다시 다 얻었으니.
앞으로 어떻게 살지는 아직 잘 모르겠어.
일단 상처받고 온 가족들과 신나게 여기저기 차로 여행이나 다녀보려고.
그러다 보면 뭘 해서 먹고살아야 할지 생각이 나겠지.
그러다 또 어느 날 너무 힘들면 제주의 너를, 내 친구들을 생각할 거야.
그럼 마구 힘이 나겠지. 뭘 해도 너희들만큼 힘들까 싶거든.
우리 다시 만나면 제주 바닷가에서 인권이 호식이 명보랑 다 같이 기분 좋게 소주나 한 잔 마시자.
그땐 내가 거하게 쏠게.
그때 너는 노래를 불러주라.
그날을 기다리며 은희의 영원한 친구 한수가."
'영주'(노윤서)와 '현'(배현성) 그리고 '인권'(최영준)과 '호식'(박지환)
'영옥'(한지민)과 '정준'(김우빈) 그리고 '영희'(정은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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