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감독 : 양우석
- 개봉일 : 2013.12.18
- 상영시간 : 127분
- 국내 누적관객수 : 약 1137만 명
- 국내 등급 : 15세 이상 관람가
- 장르 : 드라마
- 출연 : 송강호, 김영애, 오달수, 곽도원, 임시완, 송영창 등
영화의 배경, '부림 사건'.
'변호인'.
개인적으로 인생영화 중 하나다.
이 영화를 보면 착잡해지지만
누군가의 흔적이 보여서 반갑기도,
그리워지기도 한다.
'부림사건'이라 함은 '부산학림사건'의 줄임말로 1981년 9월, 신군부 세력 집권초기에 부산지역에서 독서모임을 하던 교사, 학생, 회사원 등 22명을 불법감금, 폭행, 고문으로 기소한 사건이다. 사건의 변호는 '김광일', '노무현'변호사가 맡았으며, 이 사건을 계기로 노무현 변호사는 '인권변호사'로 활동하게 된다. 부림사건은 당시 정치적 정당성이 부족한 신군부세력에 의해 철저히 조작된 사건이고 범국민적으로 공포심을 조성해 군부세력의 집권정당성을 억지로 만들어내기 위한 음모로 보인다. 피해자들은 2009년, 2014년이 되어서야, 재심을 통해 무죄판결을 받을 수 있었고, 많은 억울한 정치적 희생양을 만들어낸 현대사의 비극이다. 영화는 이 사건을 소재로 만들어진 이야기이다. 주인공인 '송우석'변호사는 '故 노무현 전 대통령'의 변호사 시절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캐릭터다.
명함 돌리는 변호사.
"안녕하십니까~
나이트삐끼 맨치로 명함돌리가,
변호사님들 우사스럽게 만든,
독고다이 송우석입니다."
고졸출신 변호사 '송우석'(송강호)은 오늘도 명함을 돌린다. 같은 변호사들 사이에서 변호사 망신 다 시킨다느니, 나이트클럽 삐끼 같다느니... 그런 말을 들어도 꿋꿋하다. 어렵게 사법고시를 합격해 변호사가 된 만큼, 돈을 많이 벌고 싶어 하는 사람이다. 이 사람은 뭔가 다른 변호사들이랑 냄새가 좀 다르다. 변호사로서 체통이니 품위니 뭐 그런 건 별로 신경 쓰지 않는 것 같다. 돈 되는 일은 모두 맡아한다. 그가 이렇게 돈 버는 일에 집착하는 이유는 가난한 고시생시절, 아이를 낳은 아내를 보러 오신 장모님에게 병원비를 신세 지는 날을 비추는 장면들로 설명된다. 막노동을 하고 난 뒤, 아내가 있는 방으로 급하게 뛰어온 우석에게 장모님은 '어려운 공부 한다고 고생 많다고' 변변치 못한 사위를 다독이고, 우석은 국밥에 소주 한 병 먹을 돈이 없어서 외상값이 많이 밀려있는 듯한 모습들이 비친다. 그날, 우석은 무전취식하고 도망을 쳐, 헌책방 앞에서 헐떡이며 멈춰 선다. 문을 닫으려는 주인에게 쌈짓돈을 내밀며 팔아버렸던 책을 다시 받아온다. 공부를 그만하려던 고시생 송우석에게 그날은 살면서 가장 비참한 날 중 하나였음과 동시에, 사법고시에 합격해서 돈을 벌어야 하는 확실한 동기를 부여받은 날이었을 거다.
도망, 그리고 7년 만의 걸음.
개인적으로 영화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이 세 장면정도 있는데, 그중 하나는 무전취식하고 도망간 그날로부터 7년 뒤, 변호사가 된 우석이 아내와 아이들과 함께 여전히 거기서 국밥장사를 하고 계시는 아주머니(김영애)를 찾아오는 장면이다. 그날 있었던 일에 대해 사과드리고 국밥값을 드리려 하는데 아주머니는 이런 말을 하신다.
"니 7년 묵은 빚을
요래 돈 몇 푼으로 갚을라 카나?
자고로 ’묵은 빚‘은,
돈 말고 얼굴하고 발로 갚는 기라.
아 자주 오라꼬~ 알겠나?"
"하이고... 아지매.
내 함 안아봐도 됩니까?..."
그렇게 다시 우석은 국밥집 단골이 된다. 이 장면은 볼 때마다 너무 마음이 따뜻해진다. '잊지 않고' 찾아온 우석이나, '잊어주신' 아주머니나, 모두 '좋은 사람들'이다. 영화는 이렇게 송우석 변호사의 '사람 냄새나는, 인간적이고 따뜻한 면모'를 그려내고 있다. 이제는 볼 수 없는, 전 국민에게 엄마 같은 '김영애' 배우님 생각도 많이 나는 장면이다.
세상! 우째 돌아가는지 좀 봐라 이 자슥아.
또 한 장면은 친구들과 국밥집에서 술자리를 갖는 장면인데, 변호사로 부산지역에서 자리 잡으며, 친구들보다 경제적으로나 사회적으로 성공한 듯 보이는 우석이 친구들 앞에서 영웅담을 푸는 모습이 보인다. 그중에 '윤택'(이성민)이라는 한 친구는 그런 모습이 영 못마땅한가 보다. TV에서는 데모를 하다 붙잡힌 학생들에 대한 소식이 나오고 거기에 대해 우석이 데모하는 학생들을 비난하는 말을 하자, 아무리 돈 버는 게 바빠도 세상 돌아가는 것 좀 보라며 호통을 치다 우석과 시비가 붙는다. 윤택은 부산에서 기자로 활동하는 사람인 듯 보인다. '바른말하는 사람들이 모두 직장을 잃었으면, 너는 그렇지 않아서 아직 기자생활을 하고 있냐'는 우석의 말에 기분이 매우 상한듯한 윤택은 술상에 지폐뭉치를 신경질적으로 내려놓으며 문 앞에 서서 '그래 나는 비겁해서, 입 다물고 있어서 아직까지 목이 붙어있다.'라며 설전을 이어나간다.
"까놓고 말해서
저 서울대씩이나 간 놈들,
맨날 저 데모 해쌌는기,
저게 문제 아이가?"
"야... 니 자들이 와 데모하는지
한 번이라도 생각해 본 적 있나?"
'암울한 시대'였다. 옳은 말을 하는 사람들은 사회적으로 도태되고, 민주화 운동에 가담한 어린 학생들은 붙잡혀 인권유린을 당하는, 그런 시대였다. 어쩌면 우석은 태생적 숙적인 '가난'과 싸우기도 바빴고, 윤택의 말처럼, 어린 학생들이 왜 길거리로 나서는지 생각해 본 적이 없을 터였다. 이때까지, 송우석 변호사는 정치 같은 건 관심 없고, 그저 자기 식구 배 불리면 그만인, 속물적인 모습을 보여준다. 개인적으로는 '윤택'의 캐릭터가 기억에 많이 남는데, '이성민' 배우가 워낙 연기를 잘하기도 했지만, 어쩌면 윤택이라는 기자의 모습이 '우리'와 가장 닮아있다는 생각을 했다. 윤택은 당시 세상이 무언가 많이 잘못되어 있다는 인식을 분명히 하고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불의에 적극적으로 맞설 용기는 없는 사람이다. 그 역시, 한 집의 가장이었을 것이고, 밥그릇이 중요하고, 가장으로서 안정감이 중요했을 것이다. 현실과 이상의 괴리감에 많이 힘들어하는 모습을 내내 보여준다. 표면적으로는 우석과 말다툼을 하는 모습이지만, 비겁한 자기 자신에게 화를 내는 모습으로도 보인다. 이후에 등장할 때는 우석이 계란을 맞아 옷이 더럽혀져 있는데, 화장실에서 자신의 옷과 바꿔 입혀주는 장면이 있다. 결국 그런 용기를 낼 자신이 없는 '우리'같은 윤택은, 불의에 정면으로 맞서는 우석에게 '옷을 바꿔주는 정도의 응원밖에 해줄 수 없겠구나.'라는 생각을 했었다.
대한민국 헌법 제1조 2항
결정적으로 송우석 변호사의 '인생이 달라지게 되는 계기'는 국밥집 아들 '진우'(임시완)가 데모를 한 전력 때문에 공안부 경찰들에게 불법 체포 되면서부터다. 진우는 붙잡혀 고문당하고 허위자백을 하게 된다. 국밥집 아주머니는 진우의 면회를 가지 못하자, 변호사인 우석을 찾아온다. 아주머니를 따라 고문을 당한 것이 확실해 보이는 진우의 참담한 모습을 마주하고, 사건에 대해 하나하나 알아가면서 그는 점점 가슴속에서 뭔가 끓어오른 것 같다. 재판은 이미 판사, 검사가 입을 맞춘 모습이고, 혐의, 증거 등 재판에서 필요한 기본적인 것들조차 실체가 없다. 논리가 없는 '마녀사냥'이다. 불의를 몰랐으면 몰랐지, 우석은 '알게 된 상황'에서는 그냥 넘길 수 없는 사람이었다. 이렇게 그는 외로운 싸움을 시작한다.
[대한민국 헌법]
제1조 ①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②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이 작품 때문에 더 유명해진 조항이기도 할 것이다. '헌법'은 국가의 '최상위법'이자, 한 국가의 근본이 되는 규율이다. 어떤 법률도 헌법을 초월한 힘을 가질 수 없다. 대한민국 헌법 제1조는 국가의 형태와 '주권'의 원천을 설명하는 조문이다. 1, 2항을 보면 알 수 있듯이, 민주국가는 뜻 그대로 '국민이 주인'인 국가이다. 극 중 표현과 같이 국가는 '국민'이다. 그런데, 재판 장면에서 보이는 모습은 '권력을 잡은 군부'가 주인인 국가로 보인다. 재판의 변론장면에서 송강호 배우가 제1조 2항을 이야기하며 보여주는, 감정에 호소하는, 절규하는 듯한 장면은 보는 이의 가슴을 뜨거워지게 만든다.
"증인이 말하는 국가란 대체 뭡니까?"
.
"증인이 말한 국가란!
이 나라 정권을 찬탈한 일부 군인들!
그 사람들 아니야!"
[대한민국 헌법] (1981년 당시, '8차' 개정헌법)
제11조 ⑥피고인의 자백이 고문ㆍ폭행ㆍ협박ㆍ구속의 부당한 장기화 또는 기망 기타의 방법에 의하여 자의로 진술된 것이 아니라고 인정될 때 또는 정식재판에 있어서 피고인의 자백이 그에게 불리한 유일한 증거일 때에는 이를 유죄의 증거로 삼거나 이를 이유로 처벌할 수 없다.
* 2023년 현재는 '9차' 개정헌법이 적용, 해당 조문은 현재 12조 7항에 명시됨.
또, 극 중에서 언급되었던 이 조항은 '고문으로 인한 자백'이 증거능력이 없다는 조문이다. 버젓이 헌법에 명시되어 있다. 그런데, 극 중 곽도원 배우가 연기한 공안부 '차동영' 경감이 '국가보안법'을 들먹이며, 국가보안법 공부를 더 하고 오라는 둥, 마치 그것이 헌법 위에 있기라도 한 것마냥 우석을 비꼬는 장면들은, 보는 입장에서 화가 치밀어 오른다. 당시 시대가 어땠는지 보여주는 장면이다. 재판장면들은 하나하나가 명장면이다. 논리 정연하게 초등학생이 들어도 알아들을 정도로 명백하게 증거를 제시하고 변론을 이어가도, 칼자루를 쥔 똑똑하신 양반들은 ‘모른 체’다.
뭐…
‘몰라야만 할 이유’라도 있었나 보지.
99명의 변호인들
그렇게 재판은 끝나고, 처음부터 조작된 재판을 송우석 변호사 혼자의 힘으로 뒤집을 수는 없었다. 결국 진우는 3년 징역을 살게 되고, 항소하지 않는 조건에 2년 후 가석방으로 나오는 결과를 만든다. 재판이 끝난 뒤, 우석은 국밥집에서 아주머니를 만나고, 아주머니는 '변호사님은 최선을 다했다고, 고맙다'라고 말한다. 국밥을 먹는 우석의 표정이 어둡다.
시간이 흘러 1987년, '박종철 열사'의 추도회. 앞장서있는 송우석 변호사가 보인다. 곧 전경들에 의해 체포되고 그는 집회 선동 혐의로 재판장에 피고로 선다. 그런데 뭔가 좀 이상하다. 변론을 신청하는 변호사가 좀 많다. 판사가 마치 교실에서 출석을 부르는 선생님과도 같이, 변호사들의 이름을 끝없이 부르는 진풍경이 펼쳐지며 영화는 마무리된다. 이 날, 송우석의 변호를 자청한 변호사들은 무려 99명이었다고 한다.
그가 살아온 삶이... 어때 보이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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