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감독 : 톰 티크베어
- 개봉일 : 2007.03.22
- 상영시간 : 146분
- 누적관객수 : 약 130만 명
- 국내 등급 : 15세 이상 관람가
- 장르 : 스릴러/드라마
- 출연 : 벤 위쇼, 더스틴 호프만, 알란 릭맨, 레이철 허드우드 등
'냄새'라는 독특한 소재
인간의 감각 중에 가장 의존도가 높은 것은 '시각'이라고 한다. 우리는 '보는 행위'에 많이 의존하면서 살아간다. 가장 직관적이기 때문일 것이다. 이 때문에 상대적으로 다른 감각들은 시각이나 청각같이 직관적인 것들보다 덜 중요하다는 생각을 하게 되는 경우가 많은데, 대표적으로 '후각'을 들 수가 있다.(중요하지 않다는 게 아니라 상대적으로 그렇다는 거다.) 냄새를 맡지 못한다고 해서 생활에 엄청난 불편함이 따르리라고는 생각하기 어렵다. '향수'라는 이 작품은 상대적으로 이런 마이너 한 주제를 가지고 많은 생각이 들게 하는 충격적인 이야기를 만들어낸 작품이다. 영화나 소설이라는 매체는 '향기'라는 소재를 직접적으로 표현할 수가 없다. 영화나 책에 냄새를 집어넣을 수가 없지 않은가?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이런 점 때문에 오히려 더 상상력이 발휘되고, 호기심을 끄는 소재라고 생각된다.
'파트리크 쥐스킨트'.
'향수'는 1985년, '파트리크 쥐스킨트'라는 독일사람이 쓴 소설이다. 세계적으로 2천만 부 이상이 팔린, 독일에서 아주 유명한 베스트셀러다. 소설의 재미나 작품성의 측면도 유명하지만, 작가의 기행으로도 유명하다. 쥐스킨트는 사생활이 대중에게 거의 노출되지 않으며, 공개석상에 모습을 드러내는 일이 거의 없다고 한다. 심지어는 상을 준다는데도 수상을 거부했다고 한다. 거기다 결벽증도 있는 것 같아 악수하기도 꺼린다고 한다. 여러모로 까다롭고 심오한 정신세계를 가진 사람인 것 같은데, 이런 점이 작품에서도 잘 드러난다. '향수'라는 이 소설은 특유의 퇴폐미와, 비틀린 듯하나 설득력 있는 이야기를 가진, 기묘한 매력이 있는 작품이다. 1985년에 발간된 소설이지만 2007년에 영화화되기까지 쥐스킨트가 영화화하는 것을 꺼려해서 긴 설득 끝에 영화로 만들어진 작품이기도 하다. 재밌는 사실은, 독일사람이 쓴 프랑스를 배경으로 하는 소설이라는 것. 그리고 영화의 배우들은 영미권 사람들이 많고 대사도 영어라는 것. 아주 글로벌하다. 개인적으로 소설을 예전에 먼저 읽었는데, 소설이 워낙 뛰어난지라, 영화를 여러 면에서 잘 만들었음에도 소설이 더 좋은 작품인 것 같다.
특별한 능력을 가진 악마의 탄생
1738년 7월 17일 파리의 어느 시장, 생선 장사를 하는 여인이 산통을 느끼고 그 자리에서 출산을 한다. 이것은 다섯 번째 출산이었고, 앞서 그랬듯이 아이를 생선더미에 방치해 죽일 생각이었다. 하지만 갓 태어난 사내아이는 기어이 세상에 자신을 알리는 울음소리를 토해내고 자신의 어머니를 사형집행대에 세우며, 특별한 능력을 지닌 악마가 탄생한다.(이 장면은 정말 사실적이다. 18세기의 유럽의 거리는 엄청나게 칙칙하고 지저분하며, 악취가 코를 찌를 것 같은 모습이다.) 사내아이의 이름은 '장 바티스트 그르누이'. 어릴 적부터 신기한 재능을 타고 난다. 그것은 모든 사물의 냄새, 심지어 멀리서 풍겨져 오는 작은 냄새나 온도의 변화에 따른 냄새의 변화도 알아챌 수 있는, '극도로 발달된 후각'을 지녔다는 것. 그는 일반인들이 잘 느끼지 못하는 바위, 물, 철 등이 가진 미세한 냄새까지도 모두 느끼고 구별할 수 있었다. 고아원을 거쳐 무두장이에게 팔려가 노예처럼 부려 먹히게 되고, 어느 날 무두장이를 따라 외출을 하게 되면서 그르누이는 인생이 바뀌게 된다. 그는 향기에 이끌려 향수가게를 보게 되고, 향수에 매력을 느낀다. 그러던 중, 어디선가 풍겨져 오는 향기를 따라가다 한 여인을 발견한다. 다가가도 인기척을 느끼지 못하는 여인에게 다가가 몸에 코를 박고 향기를 맡으려 하자 여인이 소스라치게 놀라며 비명을 지르려 한다. 그르누이는 여인의 입을 막으려다 결국 살인을 하게 된다. 죽은 여인의 몸 곳곳의 냄새를 맡으며 향을 기억하고, 사람이 죽으면 향기가 사라진다는 것을 깨닫는다. 그리고 그날부터 그르누이는 향기를 가두어 소유하는 방법을 추구하게 된다.
모순덩어리, 장 바티스트 그르누이
그르누이는 존재부터가 모순이다. 영화에서는 길게 다뤄지지 않았던 것 같은데, 소설에서는 그르누이가 본인을 깨달아 가는 과정이 길게 묘사된다. 아무도 없는 자연 속에서 은둔생활을 하는 부분이 있는데, 그 부분에서 그르누이는 자신에게서 특별한 점을 발견한다. 후각에 관해서는 천부적인 능력을 타고났지만, 정작 그런 자신에게서 '아무런 냄새도 나지 않는다는 것'. 모든 만물에 특유의 향이 있는데 그르누이에게만 그것이 없다. 이것부터가 매우 모순적인 설정이다. 작품에서는 '냄새'라는 것이 인간의 '정체성'을 나타내는 것으로 보이는데, 그것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은, '정체를 알 수 없는, 인간이 아닌 그 무언가'라는 해석을 할 수 있다. 실제 그르누이가 작품 속에서 체취가 없는 상태로 활동을 하는 과정들을 보면, 다른 보통의 인간들과의 관계에서 계속해서 겉도는 느낌을 받을 수 있다. 영화에서 그르누이를 연기한 '벤 위쇼'라는 영국 배우는 캐스팅에서 신의 한 수였다고 생각한다. 특유의 음침하고 속을 알 수 없는 그르누이의 느낌과 절묘하게 일치하는 느낌을 주며, 그르누이 그 자체인 것 같다.
체취가 없다는 것은 자신의 체취를 만들어야겠다는,
'삶의 동기'를 가져다주었을 수 있다.
처음 살인을 저지를 때도, 여인은 코앞까지 다가가 접촉을 하기 전까지는 그르누이의 기척을 알아차리지 못한다. 향수 제조법을 알려주는 '발디니'와의 첫 대면 장면도 그르누이의 기척을 눈치채지 못하고 있다가 흠칫 놀랜다. 그리고 이 역시도 영화에서는 조금 다른데, 소설에서는 마지막 희생자인 '로라'가 잠에서 깨, 그르누이를 발견하고는 반항도 하지 않고 빤히 쳐다보다가 살해당한다. 이런 설정들은 일반적으로 타인을 대하는 사람들의 모습과 조금 다르게, 꺼림칙해한다는 느낌을 확실히 심어주며, 살인을 저지르는 모습들에서 악마와도 같은 비인간성을 극대화시키는 장치로 보인다. 이런 점들 외에도, 궁극의 향기를 추구하는 남자가, 어쩌면 파리의 더러운 시장통에서, 그중에서도 가장 비위생적일 것으로 보이는 생선 썩은 내가 진동하는 곳에서 태어났다는 것도 아이러니하며, 인간들에게 강력한 쾌락을 주는 향기를 품은 궁극의 향수가, 잔혹한 살인으로 만들어졌다는 것도 모순이다. 이렇듯, 작품은 서로 상반되는 것들을 짝지어 아주 모순적으로 작품을 그려내고 있다.
필요에 의한 살인, 13명의 희생자
향기를 소유하겠다는 목표를 가지게 된 그르누이는 한물 간 향수제조사인 '주세페 발디니'에게서 향기를 추출하는 향수 제조법을 배우는 대신, 발디니를 돈방석에 앉혀준다. 천부적인 재능을 타고난 그르누이는, 보통의 인기 있는 향수제조법 같은 것은 수백 개, 수천 개도 만들어 낼 수 있을 터였다. 이렇게 발디니 밑에서 향수에 대해 배우던 중, 크게 좌절하는 일이 있는데, 그것은 발디니가 쓰는 제조법으로는 살아있는 생물에게서 향을 추출해 내는 일이 불가능하다는 것. 그 사실에 앓아 눕게 되고, 발디니는 황금알을 낳는 거위를 죽게 내버려 둘 수 없었다. 그렇게 '그라스'라는 도시에 그르누이가 원하는 제조법을 배울 수 있는 곳이 있다는 정보를 알려주게 되고, 그르누이는 발디니에게 수많은 향수제조법을 써주고 난 뒤, 발디니에게서 자유로워진다. 이렇게 그는 그라스라는 지방으로 떠나게 된다. 실제로 그라스는 '향수의 본고장'이라 불리는 곳이라고 한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향수인 '샤넬 NO.5'도 이곳에서 처음 만들어진 향수라고 한다.
12가지의 베이스가 되는 향에다가 마지막 한 가지의 메인이 되는 향을 합쳐 만드는 방식
이것은 작품에서 말하는 '향수의 기본제조법'이다. 이것이 그르누이의 살인방식을 설명한다. 그라스에 온 그르누이는 과거에 처음 죽였던 여인의 향기를 계속 생각해 왔고, 그와 비슷한 아주 매력적인 향을 가진 사람을 찾아낸다. '로라'(레이철 허드우드)라는 도시의 집정관의 딸이었는데, 소설에서는 아버지인 집정관조차도 딸에게 마음속으로 욕정을 품을 만큼 도시에서도 미인으로 손꼽히는 아름다운 여인이다. 외모도 외모지만, 이야기의 특성상, 그르누이의 시점으로 강렬한 매력을 가진 향기를 풍기는 여인으로 묘사된다. 어쩌면 이 향기 때문에 그녀를 대하는 모든 사람들이 그녀에게 매력을 크게 느끼는 것일지도 모른다. 이렇게 그녀는 그르누이의 표적이 되고, 그녀는 궁극의 향수에서 '마지막' 메인이 되는 향기가 될 것이기 때문에, 그라스에서는 베이스 재료가 될, 12명의 젊은 여인들이 하나 둘 죽어나가기 시작한다. 그는 여인들의 아름다움 그 자체나, 욕정과도 같은 것들에는 전혀 관심 없으며, 오로지 향기를 수집해 나가는 광기 어린 살인을 시작한다.
마법과도 같은 향수
'향수'라는 작품에서 가장 인상적인 장면은 '마지막 부분들'인데, 그르누이의 살인은 결국 목적을 달성하고, 그는 원하던 향수를 완성시킨 직후에 체포된다. 사형집행이 되는 당일, 그가 약간의 향수를 묻힌 채로 군중들이 들어 찬 광장에 나오자, 사람들의 행동이 변하기 시작한다. 이 향기를 맡은 사람들은 그를 천사나 신과도 같은 존재로 인식해 경배한다. 심지어 이 살인마에게 딸을 잃은 집정관도 이 향기에 굴복한다. 향수를 손수건에 뿌려 휘두르는 방향에 따라 군중들이 파도를 탄다. 이 향기는 맡는 이들로 하여금 극도의 쾌락을 가져다주는 듯하다. 옷을 벗고 향기에 취해 정신을 잃는 등... 그 모습들이 흡사 마약과도 같은 약물을 사용한 것과 비슷하다. 이 장면은 논란도 많이 되는 인상적인 장면이다. 작품을 처음 접하는 입장에서는 충격적일 수 있다.
향수를 완성한 그르누이는
부, 명예나 권력과도 같은 모든 것을 가질 힘이 있었다.
하지만 그르누이에게 그런 것들은 삶의 목적이 되지 못했고, 마지막 장면에서 그르누이는 자신이 태어났던 파리의 시장으로 되돌아간다. 향수를 완성한 그르누이에게는 더 이상 삶을 지탱할 동기가 없었던 것 같다. 어쩌면 그는 허탈감을 느낀 것 같기도 하다. 향수라는 '자신이 만들어낸 정체성'이 아니고서는, 있는 그대로의 자신은 사람들에게 어떤 관심도 받지 못하니 말이다. 그렇게 악마가 탄생한 자리에서 그르누이는 향수를 거꾸로 머리에 들이붓는다. 작품에서의 설명에 따르면, 강렬한 향을 맡은 사람들은 그르누이가 풍기는 향기에 사로잡혀, 그의 체취 하나하나를 탐하며, 그의 한 조각이라도 가지고 싶어 한다. 그렇게 그르누이는 사람들에게 할큄 당하고 뜯기고 먹히고... 마지막에는 흔적도 남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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