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감독 : 봉준호
- 개봉일 : 2013. 08. 01
- 상영시간 : 126분
- 누적관객수 : 약 935만 명
- 국내 등급 : 15세 이상 관람가
- 장르 : SF/액션/드라마
- 출연 : 송강호, 고아성, 크리스 에반스, 에드 해리스, 틸다 스윈튼 등
봉준호 감독과 '설국열차'
'봉준호' 감독. 설명이 따로 필요 없이 박찬욱 감독과 더불어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세계적인 영화감독이다. 최근에는 '기생충'이라는 걸작으로 수많은 해외의 권위 있는 영화상을 수상한 쾌거를 이루기도 했다. 그런 그가 2013년, 배우 캐스팅에서도 보이듯이, 어쩌면 해외진출의 신호탄이라고 볼 수 있는 '설국열차'를 세상에 내놓았었다. 봉준호 감독 특유의 여러 장르가 혼합된 독특한 전개방식과 사회비판적인 시각을 어렵지 않은 기발한 방식으로 영화에 녹여내는 모습들이 매우 인상적이다. 설국열차는 동명의 프랑스 만화의 판권을 구입해 제작했다고 하며 원작과는 전개가 많이 다르다고 한다. 봉준호 감독의 색깔을 입혀 재해석한 작품이라고 보면 될 것 같다.
영화의 배우들을 보면, 흔히 '캡틴 아메리카'로 알려진 '크리스 에반스'와 할리우드 유명 여배우인 '틸다 스윈튼' 등, 반가운 할리우드 스타들이 '송강호'와 같은 한국의 대배우와 연기 합을 맞추는 장면이 생소하고 신기한 느낌을 주기도 한다. 실제 크리스 에반스는 봉준호 감독에 대해 '혼자만 알고 싶은 감독'이라는 극찬을 하면서 봉준호 감독에 대한 애정을 드러내기도 했다. 이런 점은 봉준호 감독의 감독으로서의 영향력을 보여주는 것 같다.
빙하기가 도래한 지구, 살아남은 인류의 보금자리
영화의 배경은 2032년의 지구. 지구 온난화를 막기 위해 CW-7이라는 '인공냉각제'를 살포한 인류는 이것의 부작용으로 인해 빙하기를 불러오는 대재앙을 맞이한다. 어릴 적부터 기차광이었던 것으로 보이는 '윌포드'라는 사람이 설계한 설국열차가 얼어붙은 지구에서 마지막 살아남은 인류를 태우고 17년 동안 달리고 있다. 흡사 노아의 방주를 떠올리게 하는 설정이다. 이 안에서는 또다시 머리칸에서부터 꼬리칸까지 열차에 타게 된 경위로 인한 출신성분이 생기고 그렇게 질서가 잡힌다. 영화의 전개에 있어서 가장 핵심이 되는 등장인물이 네 명 정도로 압축된다.
- 윌포드(에드 해리스): '절대자'. 설국열차의 엔진을 설계하고 이 체제를 구축하며, 앞칸에서 군림하는 '군주'와도 같은 사람이다. 이런 재앙이 오기 전, 운송기업을 운영하던 윌포드는 기차에 대한 로망이 있었고 1년 단위로 세계 일주를 하는 초호화 열차를 만들었는데, 애초의 의도와는 다르게 얼어붙은 지구에서 인류를 구해낸 최고 존엄으로 '머리칸에서는' 떠받들어지게 된다. 저마다 사정이 있고 이해관계가 있겠지만, 호화로운 삶을 누리는 모습이나, 선전과 세뇌 등으로 엔진의 치명적인 결함을 은폐하려는 작업들이나, 꼬리칸 사람들을 열차의 부속품 정도로 여기는 모습들을 이런 위치에 있는 사람이 사주하지 않았다고 보기에는 힘들 것 같고, 이런 점들로 꼬리칸 사람들에게는 '폭군'으로서의 인식이 있다.
- 메이슨(틸다 스윈튼): '순응자'. 윌포드 다음가는 권력자라 볼 수 있는 인물로, 직책은 '총리'란다. 발언이나 행동을 보면 꼬리칸 출신임을 알 수 있다. 본인의 처세술과 능력으로 시스템에 완벽히 적응하며 신분상승을 한 '자수성가형' 인물임과 동시에 '권력의 개'라고도 볼 수 있다. 꼬리칸 사람들의 생활상을 잘 알고 있을 텐데 무자비하게 꼬리칸 사람들을 진압하는 장면을 보면 그녀의 성공이 그다지 정당하지는 않다고 생각된다.
- 커티스(크리스 에반스): '혁명가'. 꼬리칸의 리더 격으로 볼 수 있다. 그는 꼬리칸 사람들에 대한 부당한 대우와 꼬리칸의 참담한 현실을 참고 볼 수 없는 의협심 있는 사람이고, 이 열차에서의 시스템을 갈아엎을 새로운 체제를 추구하는 적극적인 혁명세력이다. 그렇다고 해서 권력욕이 있거나 하는 점은 보이지 않는 것 같다. 윌포드가 커티스의 리더십을 보고 자신을 계승할 인물로 선택하려 하지만 이를 거부하는 모습을 보인다.
- 남궁민수(송강호): '몽상가'. 초반부에는 기차의 감옥칸에 갇혀있다. 설정으로는 열차의 능력 있는 '보안설계자'라고 한다. 이런 위치 때문에 혁명세력에게는 구출해서 전반적인 열차에 관련된 정보를 제공받을 필요가 있는 사람이었다. 그가 감옥칸에 갇힌 이유는 열차를 나가는 문을 열려고 하는 시도를 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그는 열차밖으로의 탈출을 시도한 이누이트족 아내를 잃은 과거가 있으며, 크로놀이라는 마약성 폭발물을 모아 열차로부터 탈출하려는 생각을 갖고 있다. 좁은 열차공간에서의 시스템을 아예 근본부터 부정하는 인물이다.
'꼬리칸'에서 '머리칸', 사람 사는 곳에 반드시 존재하는 '계급'
설국열차에서 가장 크게 보이는 장치는 '계급'이다. 봉준호 감독의 작품에서는 계급과 관련된 이야기들이 흔히 등장하는데 설국열차에서는 특히 더 드러나 보인다. 꼬리칸과 머리칸의 생활상은 극명하게 차이가 나고, 꼬리칸의 사람들은 계속해서 앞을 보고 엔진과 가까워지려 하며, 좀 더 나은 생활을 위한 신분상승을 꿈꾼다. 자유민주주의의 시대를 살아가는 영화 밖, 현재의 우리 인류는 기본적으로 만인이 평등하다고 교육받으며 살아간다. 하지만 옛 왕정시대에서처럼 사회적으로 신분을 통해 명시적으로 나눠진 계급이 없을 뿐, 현재에도 돈과 같은 '재화의 축적 정도'에 따라서 계급이라는 것은 엄연히 실질적으로 존재한다. 이런 계급이라는 시스템은 인간이 농경을 시작하면서부터 지금까지, 그리고 앞으로도 인간의 사회에서는 항상 존재할 것이다. 이런 극한의 상황에서도 꼬리칸의 사람들은 굶어 죽고, 머리칸 사람들은 한가하게 정원에 앉아서 뜨개질이나 하고 있는 모습이나 세뇌교육을 통해 머리칸 아이들에게 이 계급을 물려주려 하는 모습들은 소름이 끼친다.
그리고 하나 더 보태자면, 이 작은 열차 안에는 계급만 있는 것이 아니다. 꼬리칸에서 폭동이 일어나는 장면을 보면 어두운 꼬리칸에서 불을 이용해서 혁명에서 승기를 잡는다. 그리고 커티스의 시점을 따라 앞쪽 칸들로 이동하는 장면을 보면, 인류가 지나온 역사가 보인다. 처음에 '불의 발견', 그 이후로 재배를 하는 칸에서는 '농경, 수렵' 사회, 그리고 더 앞으로 가면 좀 더 고차원적인 '교육', 교육칸에서는 선동과 숭배와 같은 '종교'적인 모습도 보인다. 이와 같이, 열차를 따라가면 인류가 걸어온 발자취가 열차 한 줄에 모두 담겨있다.
왜 '열차'인가?
실제로 이런 재앙이 닥쳤을 때, '만약 살아남은 인류가 몸담을 수 있는 수단이 있다면 뭐가 있을까?'라고 생각해 본 적이 있다. 쉽게 생각할 수 있는 것이 노아의 방주처럼 선박의 형태를 띠는 것이나 비행체를 생각하면, 그것들은 동력이 필요하고 바다와 공중이라는 큰 위험요소가 있다. 가장 안정적인 것은 아무래도 지하벙커나 건물 형태일 것으로 생각한다. 이에 대한 언급은 봉준호 감독도 인터뷰한 적이 있다. 본인이 생각하기에도 열차는 매우 비효율적인 것 같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하지만 굳이 봉준호 감독이 선로가 없으면 달리지 못하는 비효율적인 열차의 형태를 선택한 데에는 이유가 있을 것이다.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아마 일직선으로 계급을 줄 세워 다른 형태의 것들보다 가장 시각적으로나 관념적으로 뚜렷하게 순서와 계급을 나타내주기 때문에 이런 설정을 잡지 않았나 싶다.
홀로 창 밖의 세상을 바라보는 남자
'송강호' 배우가 연기한 '남궁민수'. 조연급이라고 봐도 될 정도로 영화에 출연하는 비중이 적다. 하지만 이 등장인물이 전달하는 영화의 주제의식은 매우 중요하다. 남궁민수는 언뜻 보기에 마약성 폭발물에 중독된 괴짜다. 사회성 있는 인물이라고 보기는 어려우며, 돌발행동을 서슴지 않는다. 이 돌발행동 중에 가장 위험해 보이는 것이 열차의 문을 열려고 하는 점일 것이다. 하지만 그는 모든 사람들이 신분상승이나 체제의 전복을 위해 앞칸만을 바라보고 있을 때, 유일하게 창밖을 보며 열차 밖의 세상이 살만해졌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커티스는 피상적으로 보기에는 '혁명'을 추구하지만, 그 혁명이 성공한다고 하더라도 열차라는 시스템 자체는 유지될 것이며, 그것을 유지하는 방식 또한 달라질 수 없다. 애초에 '열차 밖은 사람이 살 수 없다.'라는 기본적인 편견이 있기 때문에 결국에는 지도자를 바꾸는 정도의 차이만을 만들 것이다. 하지만 남궁민수의 생각은 열차라는 근본적인 틀 자체를 깨부수려는 '진짜 혁명'이다. 영화는 남궁민수와 같은 '몽상가'들에 의해 열차로 대변되는, 기존의 완벽해 보이지만 결국 어떤 사건에 의해 붕괴될 수 있는, '결함 있고 낡은 시스템이 붕괴되어 간다'는 점을 보여주고 있으며, 기존의 질서를 고수하던 모든 사람들은 소멸되어 간다. 결국에는 남궁민수의 딸인 '요나'(고아성)가 살아남음으로써 '몽상가'의 사상이 계승된다는 말을 하고 있으며, 기존의 질서를 무너뜨린 자리에서 새로운 시작을 보여주며 작품은 끝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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