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개봉한 '신카이 마코토' 감독의 애니메이션 영화인 [스즈메의 문단속(Suzume)]에 관한 정보, 개인적인 해석과 리뷰를 제공하는 포스팅입니다. 제 포스팅에는 현재 상영중인 작품에 대한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관람하기 전이시라면 참고해 주세요.
- 감독 : 신카이 마코토
- 개봉일 : 2023.03.08
- 상영시간 : 122분
- 누적관객수 : 현재 상영 중
- 국내 등급 : 12세 이상 관람가
- 장르 : 애니메이션/어드벤처/판타지
- 성우 출연 : 하라 나노카(이와토 스즈메 역), 마츠무라 호쿠토(무나카타 소타 역), 후카츠 에리(이와토 타마키 역) 등
열일곱 살의 여고생, '스즈메'.
"엄마..."
어느 들판에서 엄마를 애타게 찾는 '어린 스즈메'의 모습을 비추며 작품이 시작된다. 꽃이 예쁘게 핀 들판이지만 주위로 보이는 집이나 건물들은 폐허가 된 모습이다. 엄마를 찾아 헤매는 모습이 애처로운데, 울다 지쳐 주저앉아있던 스즈메의 곁으로 엄마로 보이는, 흐린 실루엣의 어떤 여인이 다가온다. 그리고 이 꿈을 꾸는 현재의 '스즈메'가 잠에서 깨어난다.
"얘... 학생...
이 근방에 '폐허'는 없니?"
"사람이 안 살게 된 동네라면,
저쪽 산에 있어요."
잠에서 깬 '스즈메'는 열일곱 살의 여고생이다. 일본 남부 '규슈'의 '미야자키'라는 지방에서 이모인 '타마키'와 둘이 살고 있다. 스즈메가 다섯 살이었을 무렵, 어머니는 '동일본 대지진'이 일어날 당시에 희생된 안타까운 사연이 있다. 이모가 어머니의 역할을 대신하는 모습들이 보이는데, 함께 아침식사를 하고 이모는 출근, 스즈메는 등교를 한다. 자전거를 타고 학교로 가는 스즈메, 반대편에서 올라오는 어떤 남자가 보인다. '소타'라는 이 남자는 장발이 잘 어울리는 잘생긴 청년이다. 자전거를 타고 가는 스즈메에게 근처에 폐허가 없냐는 이상한 질문을 하는데... 스즈메는 소타의 모습을 보고 첫 만남에서 소타에게 끌리는 눈치다...
소타와 잠깐 스친 스즈메는, 학교로 가던 길에 갑자기 방향을 틀어 폐허가 되었다는 그 동네로 간다. 대사를 보면 자기도 왜 가는지 어이가 없는 눈치다... 한창 잘생긴 남자 좋아할 때지... 뭐 어쨌든, 이렇듯 공부에는 별 관심 없어 보이는(?) 스즈메는 잠깐 마주친 소타와의 만남에서 무언가를 느꼈는지, 홀린 듯 그 동네에서 소타를 찾는다. 사람이 살지 않은지 꽤 오래된 듯한 동네인데... 어느 폐건물 안에서 혼자 덩그러니 위치한 낡은 '문'을 발견한다.
"문...이라고 했지?..."
스즈메는 소타가 '문'을 찾고 있다고 했던 말을 떠올리며, 이 문 앞에서 멈춰 선다. 그리고 조심스럽게 문을 열어보는데... 문 밖으로 다른 세계가 존재한다. 놀란 스즈메는 반대편으로 건너가 보지만, 반대편의 세계가 보이기만 할 뿐 넘어갈 수는 없는 것 같다. 그러다가 스즈메의 발에 걸리는 무언가가 있는데, 고양이 모양의 석상이다. 무심코 이 석상을 들어 올렸는데, 석상은 곧 살아있는 털뭉치의 무언가로 바뀌어 도망간다... 오늘따라 기묘한 일의 연속인 스즈메는 무서운 마음에 도망치듯 그곳을 빠져나온다. '문'은 그대로 열어둔 상태로...
"저기... 봐봐..."
이렇게 학교로 온 스즈메는 창밖으로 이상한 것을 보게 된다. 자신이 갔다 온 그 동네 쪽에서 붉은 무언가가 하늘로 뻗기 시작하는데, 친구들의 눈에는 보이지 않고 스즈메의 눈에만 보이는 듯하다. 불길한 마음을 안고 스즈메는 또다시 그 마을로 급히 뛰어간다.
아뢰옵기에도 송구한
히미즈의 신이시여.
머나먼 선조의 고향 땅이여.
오랫동안 배령받은 산과 하천을,
삼가 돌려드리옵나이다!
문제의 '문'이 있던 장소로 뛰어간 스즈메는 놀라운 광경을 목격한다. 하늘로 솟구치는 붉은 기운의 근원지는 바로 '열려있던 문'이었고, 소타가 이 문을 힘겹게 닫으려 하고 있다. 일반 사람들의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이 붉은 기운의 영향력이 점점 커짐에 따라 '지진'이 일어나고, 이를 방치해 둘 경우에는 끔찍한 재난이 발생할 것이다. 둘은 함께 문을 닫으려 노력을 하고, 문이 닫히는 순간, 소타는 목에 걸고 있던 열쇠로 주문을 외우듯 문을 잠근다.
작품을 관통하는 테마, '지진'.
'신카이 마코토' 감독의 이번 작품 '스즈메의 문단속'에서는 '지진'이라는 테마가 뚜렷하게 나타난다. 이를 이해하기 위해 일본의 설화를 잠깐 짚고 넘어가면 좋을 듯하다. 일본열도는 타고난 지형적 특성상, 자연재해가 많이 일어나는 지역인데, 그중에서도 특히 '지진'이 대표적이다. 옛날부터 잦은 지진은 일본인들에게 공포의 대상이었으며, 이에 대한 설화나 민담이 많다고 한다. 스즈메의 문단속에서도 이런 설화들을 차용한 부분이 보이는데, 일본인들의 전설에 따르면, 일본인들은 땅 밑에 거대한 무언가가 존재하며, 그것이 지진을 일으키는 원인이 된다고 믿었다고 한다. 이는 주로 '지렁이'나 '메기'의 형상으로 그려진다고 한다. 그리고 지진을 일으키는 이 존재의 머리와 꼬리에 '요석'을 눌러, 지진을 막는 '신'도 그려지고 있다. 작품에서 '미미즈'라고 불리는, 문을 닫아 인간세상으로 나오는 것을 막아야 하는 '붉은 기운'은, 땅 밑에 존재하며 지진을 유발하는 이 존재를 형상화한 것이다.
"스즈메. 친절해. 좋아."
이렇게 문을 닫는 데 성공하고, 소타는 팔에 상처를 입게 되는데, 스즈메는 이를 치료해 주려고 소타를 집으로 데려온다. '소타'라는 이 청년은 집안 대대로 비밀리에 '토지시'라는, 일종의 '무당'과도 같은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이는 한자로 뜻을 풀이하면 '(문을) 닫는 사람'이라는 뜻이다. 소타의 집안은 예로부터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잊힌 폐허들을 돌아다니며 미미즈가 인간 세상으로 나올 수 있는 '뒷문'이라 불리는 문들을 닫아 재난을 막는 일을 한다. 그런데 이런 와중에 스즈메의 방 창문에 조그만 고양이가 하나 보이고, 지진이 일어나 집을 잃은 고양이로 본 스즈메는 먹을 것도 주는 등 애정을 보이는데, 이 고양이는 갑자기 사람의 말을 하더니, 무슨 마법을 썼는지 소타를 '의자'로 바꿔버린다... 이 의자는 스즈메의 어머니가 생전에 스즈메에게 만들어준, 유품과도 같은 소중한 의자인데... 이렇게 된 관계로, 작품에서는 뛰어다니는 의자가 보이고... 문을 닫으러 다니는 일을 돕는 스즈메의 모습이 그려진다.
'문단속'을 위한 스즈메의 여정.
'다이진'이라는 이름을 가진 이 고양이는, 스즈메가 처음 폐건물의 문을 봤을 때, 땅에 박혀 있던 '요석'이다. 이 요석은 미미즈를 통제하는 두 개의 요석 중에 하나인데, 이것을 뽑아버렸다는 것은... 앞으로 더 많은 뒷문이 열릴 것을 의미한다. 의자로 변해 거동에 제약이 생긴(?) 소타는 다이진을 찾아 원래의 몸을 찾고 원래대로 상황을 돌려야 하고, 요석을 뽑은 장본인인 스즈메는 이를 돕고 싶어 한다. 이렇게 스즈메는 의자로 변한 소타와 함께 미야자키를 떠나 먼 여행을 하게 된다.
이렇게 다이진을 쫓으며, 문을 닫으러 다니는 스즈메와 소타는 곳곳에서 좋은 사람들과 만나게 된다. 작품은 이런 식으로 일본의 여러 지역을 여행하는 로드무비의 형식을 띤다. 살고 있는 곳인 '미야자키'의 문단속을 마친 뒤, 시코쿠의 '에히메 현', '고베', '도쿄'로 이어지는 여정인데, 일본 동부지역을 따라 보이는 이 장소들은 실제로 일본에서 큰 재난이 일어난 지역들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문을 열고 닫는 행위.
"다녀오겠습니다."
신카이 마코토 감독의 이전 작품들과 같이 이번 작품에서도 영화적 장치들을 통한 '은유'들이 많이 보이는데, 지진을 형상화한 미미즈도 그렇고, 개인적으로 가장 인상적인 설정은 '문'이라는 장치다. 우리는 항상 집을 나설 때, '다녀오겠습니다.'라는 인사를 하고 집을 나선다. 그런데 이 말은 어떤 상황에서는 '마지막'이 될 수 있다는 것... 재난을 겪은 사람들의 경우가 그러했을 것이다. 아침에 인사하고 집을 나서서 영영 문을 열고 돌아오지 못하게 된 슬픈 사연들... 이런 점에서 감독은 '문'이라는 장치를 설정했다고 한다. 이 문을 열면 인간세상이 아닌, 모든 시간이 공존하는 '저세상'이 나타난다는 설정도 여기에서 착안한 듯하다.
감독은 미미즈가 나오는 이 문들을 '재난이 일어났던, 그래서 사람들의 아픈 기억들이 쌓여있을' 폐허 속에 등장시킨다. 설정으로는 소외되고 잊힌 이런 장소들에서 미미즈의 기운이 힘을 얻게 되고, 사람들의 좋은 기운이 있는 곳에서는 미미즈가 억제된다고 한다. 재난으로 인한 좋지 않은 기억들을 회피하고 방치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못하다는 감독의 생각이 드러나는 듯하며, 이런 비극들을 기억하고, 위로하는 작업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듯하다. 작품에서도 소타와 스즈메가 열린 문의 문단속을 하는 장면들을 보면, 그 장소들에서의 사람들의 추억이나 말소리들이 들리고 그런 것들을 충분히 공감하고 기억하는 상황이 되어야, 열쇠구멍이 나타나고 문단속을 할 수 있게 된다는 설정이다. 어찌 보면 스즈메의 이런 문단속들은 '상처 입은 사람들을 기억하고 위로하는' 과정임과 동시에 재난을 막아, '다녀왔습니다.'라는 말을 하는 '평범한 일상'을 지키는 일인 것이다.
도쿄에서의 희생, 요석이 되는 '소타'.
이렇게 스즈메와 소타는 도쿄에까지 이르게 되는데, 여기서 도쿄에 있던 나머지 요석까지 뽑혀버리고 만다. 구속하는 요석들이 없어진 미미즈는 도쿄의 뒷문을 통해 도쿄상공에 떠오르는데, 그 크기가 엄청나다... 이 미미즈가 떨어져 지진을 일으킨다면 수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잃는 거대한 참사가 일어날 것이 분명하다. 이 상황에서 지진을 막을 방법은 미미즈에게 요석을 꽂는 수밖에 없고, 이 역할로 의자가 된 '소타'가 희생하게 된다. 이번 작품에서 도쿄 상공에 출현한 미미즈의 모습이나 판타지적인 색채가 풍기는 장면들에서 보이는 영상미와 음악은 역시나 아주 인상적이다. 별다른 생각 없이 작품을 접하더라도 이런 영상미와 음악이 주는 여운은 상당히 클 듯하다.
"소타 씨가 없는 세상에서
살고 싶지 않아요!"
소타의 희생을 겪은 스즈메는 여기서 무언가 각성하게 된다. 소중한 사람을 구하려는 결심과 함께, 그녀는 원래 자신의 복장인 '교복'을 챙겨 입고, 소타의 '신발'을 빌려 신는다. 이것은 소타와의 만남을 통해 자신을 찾아가고, 기억하기 싫은, 잊어버렸던 과거를 마주하기로 결심했다는 것을 보여주는 장면이다.
스즈메의 종착지는 '과거의 기억'.
소타를 구하기 위해 다음 여정을 떠나는데, 그 장소는 일본의 북부지방에 '이와테 현'이며, 스즈메가 지진으로 어머니를 잃었던, 옛 고향이다. 그러니 스즈메는 다섯 살 때까지 살던 고향을 떠나, 반대편에서 살고 있었던 것이다. 어머니를 잃은 그 이후로 기억하기 싫었을 장소이지만, 이제 스즈메는 옛 과거를 마주하기로 한 것이다. 이 여정에서 이모와의 오해와 갈등이 풀리는 과정도 인상 깊다. 스즈메와 이모는 마음속 이야기를 숨기고 덮어놓는 방식으로 관계를 유지한 것으로 보이는데, 이 계기로 마음속 이야기들을 꺼내는 모습들이 보인다.
스즈메는 폐허가 된 옛 고향 동네를 찾게 되고, 여기서 오래전에 묻어두었던 타임캡슐 속에 자신의 일기를 보고, 저세상으로 통하는 문이 어디 일지를 찾는다. 이 과정에서 두 요석인, '다이진'과 '사다이진'이 뒷문을 열고 다닌 것이 아니라, 열리는 곳을 찾아주었다는 사실도 알게 된다. 그러니 이 고양이들은 악역이 아니었던 셈이다... 스즈메는 그렇게 기억을 더듬고, 두 고양이의 도움을 받아 저승으로 통하는 문을 찾아낸다.
"좋아하는 사람이 있는 곳에!"
이렇게 두 고양이와 스즈메는 소타가 있을 저세상으로 뛰어든다. 이후 장면에서 보이는 두 고양이들, 소타, 스즈메의 활약과 미미즈의 거대한 모습들은 영화관에서 큰 영상으로 보는 것을 추천한다... 흡사 '이누야샤'나 '하울의 움직이는 성'과도 같은 작품들의 한 장면을 연상케 한다... 개인적으로도 아주 인상 깊은 장면이었다. 우여곡절 끝에 소타는 스즈메의 손에 구출되고, 그는 '살고 싶다.'라는 의지를 내비치는데, 이런 모습은 원래 요석이었던 두 고양이들을 다시 요석으로 되돌리게 된다. 요석이 된 두 고양이들은 날뛰는 미미즈를 다시 봉인시키고, 상황이 정리된다. 이 두 고양이들을 보며 느낀 바는, 사실 나쁜 존재라기보다는, 소타나 스즈메의 살고 싶어 하는 의지를 본다면, 언제든 요석으로 돌아가 다시 희생할 수 있는 존재들인 듯하다.
"나는 말이야,
스즈메의 내일이란다."
이후 비치는 장면에서, 어느 들판이 보이는데, 여기서 스즈메는 깨닫는다... 어릴 적 엄마를 찾으며 사경을 헤맬 때, 어린 스즈메는 잠깐 저승의 문턱을 넘은 적이 있었던 듯하다. 거기서 엄마라고 생각하고 봤던 그 여인은... 사실 지금의 자신이었던 것. 모든 시간들이 공존하는 저세상에서는 두 시절의 스즈메가 동시에 존재할 수 있는 듯하다. 스즈메는 어린 자신에게 멋지게 클 거라는 위로의 말을 건네고, 어머니가 남긴 유품인 동시에, 소타가 변했던 '의자'를 전해준다. 미야자키를 떠나 옛 고향까지 오는 이 긴 여정은 엄마를 잃은 다섯 살에 머물러 있던, 스즈메 자신을 성장시키고 일깨우는 여행이었던 셈이다. 작품은 이런 스즈메라는 소녀의 모습을 통해, 상처 입은 사람들에게 희망과 위로를 전하고 있는 듯하다.
소타와 함께 돌아온 스즈메는 이모와 함께 미야자키로 가는 길에, 그동안 만났던 사람들을 다시 만나며 여행하듯 돌아가고, 소타는 다시 '토지시'로서의 삶으로 돌아간다. 그리고 어느 날, 자전거를 타고 등교하던 스즈메는 처음 만날 때와 마찬가지로 오르막을 올라오는 '소타'의 모습을 보게 된다. 그리고 스즈메가 '집에 돌아오는 사람을 반기는 인사말'인 '오카에리'라고 인사하며 작품은 끝이 난다.
'그날',
모두가 하지 않았던 말을,
나는 지금부터 말하기로 결심했다.
"おかえり(어서 와요.)"
500만 돌파한 스즈메의 문단속, '더빙판' 2023년 5월 개봉예정.
'스즈메의 문단속', 등장인물의 목소리를 연기한 성우들.
'신카이 마코토' 감독의 다른 작품.
[너의 이름은(Your name)]
[날씨의 아이(Weathering With Yo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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